"이러다 우리나라 학생 다 죽어요"
청소년 2655명 설문조사, '학원 12시 조례' 95%가 반대...'학업 경쟁 심각하다' 60%
학원 운영 시간을 12시까지로 연장하는 서울시의회 조례안에 청소년 95%가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토끼풀>이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상에서 실시한 이번 조사에는 청소년 2655명이 참여했고, 그 중 중학생은 32%가량, 고등학생은 64%였다. 각종 시민사회 단체들이 비판 성명을 내놓았고, '국민의힘의 학원심야교습연장 범시민행동'까지 구성해 반발하고 있는데, 학생 당사자들까지 압도적으로 반대 의사가 높게 나오면서 조례안이 힘을 잃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학원 운영 시간을 12시로 연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문항에 학생 응답자 2513명(94.65%)이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 응답자는 142명으로 5.3%에 불과했다. 많은 응답자들은 청소년 자살 문제와 과도한 경쟁 문제 등을 언급하며 자신과 동료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비관했다.
이번 조사에서 청소년들은 ‘서울시의회와 교육청에 한 마디’ 란에 다양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과도한 경쟁 문제를 짚은 응답이 많았다. 자신이 특성화고 학생이라고 밝힌 한 응답자는 “학생은 배울 학(學)에 날 생(生) 자를 쓴다. 배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라며 “후배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학생들의 인권 문제 때문에 반대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10시로 시간을 정해 봤자 지키지 않는다. 본인 의지로 그러한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굳이 반대표를 던지는 이유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늦게 끝나는 건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팽배한 학벌주의와 과도한 교육열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공교육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 고등학생은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에서 학원 운영시간이 연장된다면 공교육 집중도도 떨어지고 사교육 의존이 더더욱 심해진다”며 “교육 현실을 직접 느껴 보고 검증해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고등학생은 “진로를 찾으라며 만든 고교학점제도 허점투성이”라며 “사교육을 조장하는 국가의 행위는 모순”이라고 직격했다.
응답자 중 290명이 자살 문제가 심화되는 것을 염려했다. “우리나라 학생들 전부 자살해서 노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한 학생의 절규가 대표적이다. 다수의 응답자는 ‘청소년 자살률 1위 국가인 이유가 있다’고 했다. 수면권 문제에 대해서도 응답자들은 “수면 시간을 보장해 달라”거나 “적정 수면 시간이 8~9시간인데 5시간도 자지 못하고 있다”는 등 고통을 호소했다. 수면 문제는 응답자 중 177명이 지적했다.
청소년들의 의견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충분히 수렴해야 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한 청소년은 “우리는 가만히 서 있는 마네킹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한 중학교 학생은 “정녕 청소년을 위한 조례안이었다면 먼저 청소년의 의견을 물어봤어야 했다”며 “청소년이 스스로 나서서 의견을 표출해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썼다.
해당 조사에서 ‘현재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교육 현안’을 묻기도 했는데, 약 54%의 청소년 응답자가 ‘고교학점제와 5등급제’를 꼽았다. 한 고등학생은 “학생·학부모·교사 모두 반대한 고교학점제와 디지털교과서를 추진한 결과 자퇴율이 늘고 경쟁이 심각해지기만 했다”며 “다른 나라를 따라가기보다는 직접 겪고 있는 우리나라 학생과 교사의 의견을 들어야한다"고 썼다. 고교학점제 문제는 특히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불만이 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주도해 진행 중인 ‘고교학점제 폐지, 고교 교육 정상화 서명운동’은 전국의 학생·교사·학부모 등 교육 관련자 4만5천여 명이 참여했다. 관련기사(수행평가)
결국 학원 운영 시간 12시 연장 조례나 고교학점제 등 많은 교육 정책들이 실제 현장의 목소리 없이, 특히 학생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더더욱 반영되지 않고 ‘탁상공론’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목소리가 크다. 교육 정책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대상은 학생인데 학생들의 의견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에 앞으로 전반적인 제도가 개선되어야 하겠다.
'현재 어느 정도의 학업 경쟁을 체감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0%가량이 최고 수치인 5점을 줬다. 1582명이 굉장히 심한 수준의 경쟁을 체감하고 있는 것. '고등학교를 3년 가까이 다녔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학생은 "중학생 동생들에게 고등학교의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주면 10명 중 8명이 운다"고 했고, "친구들과 경쟁하다 보면 '순수한 친구 관계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과도한 경쟁 구조가 학생들의 정신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는 것인데, 정책 입안자들은 오히려 경쟁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는 지금의 작태를 안타까워하는 응답자도 200명이 넘었다.
이번 <토끼풀>의 조사로 실제 학생들은 95%가량이 학원 운영 시간 12시 연장 조례에 반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고교학점제도 비슷한 수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만큼, 해당 정책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더 나아가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과도한 경쟁 구도와 교육 정책 수립 과정에서 청소년 의견 수렴이 미비한 문제도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겠다.
'수능을 하루 앞둔 목동의 고3' 학생은 설문을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이 자조했다.
대한민국 고3으로 입시를 준비하며 체력과 정신력을 극한까지 몰아붙였습니다. 그 1년동안 느낀 점은 기괴할 정도로 맹목적인 대한민국의 입시에 대한 과열이 학생에게 상상보다 더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현실은 다를지 몰라도, 학생들은 '대학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을 맹신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스스로에게 실패자 낙인을 찍으면서 체력뿐만이 아닌 인격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