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3천명인데...마을 자치조직 40개 넘는 홍동면
[홍동면 특별취재] 독자적 지역화폐에 '공유 책방'까지... 지속가능한 농촌 만든다
<토끼풀> 3명의 기자들이 첫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 문성호·이서찬·조준수 기자로 구성된 ‘홍동면 특별취재팀’은 1박2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머물며 홍동면 곳곳을 누볐다.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안 자고 풀무학교(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홍동중학교, ‘ㅋㅋ만화방’, 밝맑도서관 등을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길게 인터뷰한 사람들만 10명이 넘고, 오고가며 만난 사람들은 수십명에 달한다(홍동면 인구는 3천 명).
홍동면은 충청도 대부분 지역과는 달리 평균 연령이 상당히 젊다. 귀농한 젊은이들도 많고, 풀무학교를 졸업한 후 홍동에 눌러앉아 농사짓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마을 전체가 진보적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 협동조합이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 할머니 7명이 모여 농협 매장에서 반찬을 파는 협동조합까지 있다!
물론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다. 지난 21대 대선에서 권영국 후보의 득표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3.9%) 지역이다. 권영국 후보가 이준석 후보를 1표 차로 이기기도 했다. 전국으로 보면 권영국 후보(0.98%)와 이준석 후보(8.34%)는 득표율이 8배 넘게 차이가 난다.
청소년들도 “노무현 밈을 거의 보지 않는다(김한울 학생).” 전국에서 씨름하고 있는 청소년 극우화의 여파도 이 지역에는 거의 미치지 않았다니,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신기한 마을에서의 1박 2일 취재를 연작 기사로 담아냈다. 위 ‘지방시대, 홍동에서 답을 찾다’ 코너명을 클릭하면 다른 기사들도 전부 볼 수 있다. 청소년의 시각에서 치열하게 걷고 물은 기록이다.
홍동면은 주민 자치가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활발하다. 인구가 약 3000명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부문에 걸친 민간 조직이 40여개나 구성되어 있다. 현장에서 홍동면의 자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취재했다.
밝맑도서관은 홍동면 유기농업의 역사와 마을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평생을 마을과 교육에 헌신한 이찬갑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주민들의 손길로 세워졌다. 이름도 이찬갑 선생의 호인 ‘밝맑’에서 딴 것이다. 단순한 도서 관리를 넘어 마을의 귀중한 기록물을 수집하고 보전하는 아카이빙 역할을 수행하며, 홍동면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적 가교가 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며 지혜를 나누는 이곳은 홍동면이 지향하는 '삶과 배움이 하나가 되는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도서관은 마을 자치와 인재 양성을 위한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기도 한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전 세대가 어우러져 인문학 강좌, 기록 활동, 토론회 등에 참여하며 마을의 의제를 논의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쌓아간다. 학교 교육을 넘어 마을 전체가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는 홍동면의 교육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지역의 교육 협동조합인 '햇살배움터' 등과 연계하여 학생들에게 생태와 인권 등 깊이 있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마을을 이루는 자치 단체는 더 다양하다. 이를테면 햇살배움터와 같은 협동조합이 있겠다. 햇살배움터는 2008년에 ‘홍동햇살배움터조합’으로 시작한 교육 사회적협동 조합이다. 햇살배움터는 홍동중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1학년 '진로와 적성', 2학년 '생태', 3학년 '민주시민 양성')를 직접 운영하며 학생과 학교 밖 전문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방과 후 프로그램 지원, 멘토링 운영, 마을 교사 양성 등을 통해 마을의 인적 자원을 교육에 녹여내기도 한다. 학교와 마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는 홍동만의 교육 자치를 상징하는 것.
햇살배움터가 운영하는 수업에서 특히 인상깊은 것은, 1학년이 직접 인터뷰를 계획하고 직업인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진로 시간에 학생들을 자리에 앉혀 놓고 동영상만 보여 주는 여타 지역의 학교들와 다르게, 특정 직종에 종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 밖의 세상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

햇살배움터는 청소년 문화공간 'ㅋㅋ'(ㅋㅋ만화방)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ㅋㅋ만화방은 마을 초입 농협 건물 2층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건 물론, 다양한 만화책과 장난감을 보유해 마을 어린이·청소년들이 자주 찾는다. 닌텐도 스위치와 라면 기계까지 구비되어 있는 ㅋㅋ만화방은 햇살배움터 조합원들의 자원봉사로 유지된다. 실제 기자가 ㅋㅋ만화방에 머물던 잠깐 사이 한 초등학생이 들러 만화책을 빌려 가기도 했다.

홍동면에는 2012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잎’이라는 독특한 지역 화폐가 있다. 주민들은 현금을 ‘잎’으로 환전하여 마을 내 식당, 카페, 빵집 등 여러 가맹점에서 자유롭게 사용한다. 이렇게 마을 안에서 화폐가 돌면 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이웃 농민이나 상인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현재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잔액을 조회하거나 이웃끼리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마을 경제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이웃 간의 도움을 주고받는 자치 문화도 인상적이다. 주민들은 ‘핑퐁’이라는 시간 공유 시스템을 통해 누군가를 도와준 시간을 기록하고, 이를 나중에 다른 이의 도움으로 돌려받는다. 1분이 1핑(또는 1퐁)이 되는 이 방식은 모든 사람의 시간을 똑같은 가치로 존중하며 마을의 결속력을 다지는 역할을 한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이어온 홍동의 상부상조 정신을 현대적인 기술로 풀어낸, 홍동만의 따뜻한 자치 모델이다.

이렇듯 홍동면 주민 자치의 상징이 된 협동조합 운동은 풀무학교에서 그 싹을 틔웠다. 학생들이 스스로 도시의 학용품을 사와 서로에게 판매하면서 시작된 ‘풀무생활협동조합(풀무생협)’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선구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협동조합 모델은 유럽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지만, 국내 농촌 공동체에 이를 도입하고 실천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풀무생협에서는 학생들끼리 스스로 학용품과 생필품을 사고판다. 지우개가 600원, 연필이 900원에 판매되는 등, 학교 공동체가 모여 만든 생활협동조합은 실제로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풀무학교 설립자들의 ‘협동조합 지역사회’ 건설 의지를 계승하여 창립된 풀무생협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공동체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창립 초기부터 수도권 지역과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시작한 이들은 유통 과정을 줄여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방향을 지향했다. 특히 서울 영등포에 ‘좋은쌀집’ 간판을 거는 등 도시 소비자들에게 유기농산물을 직접 전달하려 했던 젊은이들의 노력은 전국적인 도농 직거래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갓골책방'도 풀무학교의 도움을 받아 설립된 마을 책방이다. 풀무학교에서 기증한 건물 한 채에 통째로 자리잡은 이 책방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한 칸씩 공간을 분양받아 책을 큐레이션해 판매한다. 책방 안으로 들어가면 큰 탁자가 있다. 이 탁자에서 '녹색평론 읽기모임' 같은 모임이 진행되기도 하고, 주민 개개인이 와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기도 한다.

갓골책방은 책과 관련된 마을 사업의 중추 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청소년 책 사줄게' 이벤트가 시행된다. '책 사줄게'는 마을 주민들의 후원을 받아 12~19세 청소년에게 갓골책방의 책 한 권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행사다. 마침 기자가 갓골책방을 방문한 날 '책 사줄게' 행사가 처음 진행됐는데, 어림잡아 10명가량의 청소년이 책을 받아 갔다. 처음 진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소년들에게 실제 효과가 있는 정책인 것.

이렇듯 홍동면의 자치는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실제 삶을 지탱하는 구체적인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 주민들은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효능감을 느낀다. '더불어 사는 마을'이라는 표어처럼 주민들은 자발적인 연결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