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까지 학원, 아이들 '학습기계' 만드는 것"

117개 단체,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 기자회견...한 목소리로 '시대 역행'

"12시까지 학원, 아이들 '학습기계' 만드는 것"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120여개 시민사회 단체가 10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문성호 기자

서울시의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학원 심야 교습 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밤 12시)으로 연장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자, 교육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학생들의 건강권을 볼모로 사교육 업계의 배만 불리려는 시대역행적 시도"라는 성토가 10일 하루 종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이어졌다.

"UN 가서 절규했던 아이들… 정치인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아"

10일(월) 오전 11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120여 개 단체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에서 '학원 심야교습시간 연장 조례안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영하에 가까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와 조례안의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민정 전 의원. 사진 문성호 기자

강민정 전 의원은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참석했던 청소년들의 일화를 소개하며 울분을 토했다. 강 전 의원은 "당시 대한민국 청소년 4명이 제네바까지 날아가 '어른들은 주 52시간 노동제로 법적 보호를 받는데, 도대체 우리들의 쉴 권리는 어디서 보장받아야 하느냐'며 절규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 아이들의 절규에 유엔 심사위원들조차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했다"며 "아이들이 국내 정치권에 희망을 잃고 먼 타국까지 가서 호소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지금처럼 아이들의 잠잘 시간마저 빼앗으려는 비정한 정치인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성적보다 쉼이 먼저"… 교육·시민단체 한목소리로 성토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상현 녹색당 공동대표는 통계 수치를 근거로 조례안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대표는 "초중고생 행복지수가 100점 만점에 45점에 불과하고, 고등학생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남짓"이라며 "이미 OECD 최고 수준의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부가 아니라 충분한 쉼과 수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경쟁 교육이 아닌 생태 전환 교육"이라며 "국민의힘은 시대를 역행하는 반인권적 조례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발언하는 녹색당 이상현 공동대표(우측) 사진 문성호 기자

홍순희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현장 교사로서 느끼는 위기감을 생생하게 전했다. 홍 지부장은 "초등학생조차 '너무 피곤하다, 친구랑 놀고 싶다'고 호소하고, 중고등학생들은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지경"이라며 무한 경쟁 교육의 폐해를 지적했다. 그는 "밤 10시까지 학원에 갇혀 있다가 다음 날 학교에 와서 조는 아이들에게 자정까지 버티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아동학대"라며 "지금 필요한 건 학원 시간 연장이 아니라 단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사자인 청소년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날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수영 활동가는 "국민의힘은 입시 경쟁을 강화하고 학원 카르텔의 배를 불리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냐"고 물었다. 그는 "다른 지역이 12시까지 하니 서울도 풀라는 것은 지방자치의 본질을 망각한 처사"라고 비판하며,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을 향해서도 "의석수 핑계 대지 말고 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부끄럽다'… 학부모 민원 빗발쳐

현직 시의원들의 내부 고발성 발언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박유진 시의원은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 행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의원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폐지, TBS 지원 중단 등 일련의 사태는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억누르는' 동일한 관점에서 진행된 일"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번 조례안 역시 '다른 도시는 더 공부시키는데 서울도 밤 12시까지 학원 보내는 게 왜 잘못이냐'고 되묻는 폭력적인 발상"이라며 "학생들에게 1분이라도 더 재우고, 따뜻한 밥 한 끼 더 먹이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을 짓밟는 행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유진 시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문성호 기자

같은 당 이소라 시의원(교육위원회)은 "교육위원으로서 참담하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의원은 "조례를 발의한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도 학부모인데 이건 아니다', '너무 부끄럽다'는 반대 여론이 존재한다"고 폭로했다. 그는 "밤 12시까지 학원을 허용하면 '새벽까지 아이들 뒷바라지하라는 거냐'는 맞벌이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며 "학생 안전 문제와 심각한 수면권 침해를 야기할 이 조례안이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도록 끝까지 막겠다"고 약속했다.

학원 업계, 내일 대규모 '세 과시' 예고… 긴장감 고조

반대 행동은 저녁 퇴근길 피켓팅으로까지 이어졌다. 시민들은 '밤 12시 학원 반대', '아이들에게 잠을 허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조례안의 부당성을 알렸다. 장효주 한성여중 2학년 학생은 친구와 함께 참석해 "국민의힘은 '형평성'을 운운하며 조례안을 찍어내고 있는데,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오대희 지부장이 지나가는 시민을 앞에 두고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문성호 기자.

한편, 학원 업계의 조직적인 대응도 감지되고 있다. 11일(화) 오전 10시 30분, 서울시의회 제2대회의실에서 강남·목동 등 대형 학원장들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업계 관계자 100여 명이 모여 조례안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시민사회단체들은 같은 시각 서울시의회 앞 긴급 대응과 함께 시의원들을 향한 집중적인 문자 행동을 예고하며 총력 저지 태세에 돌입했다. 조례안 처리를 둘러싼 양측의 충돌이 초읽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