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소년 극우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막아야

최근 청소년층에서 관찰되는 극우적 정치 성향의 확산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제도권 교육의 대응 실패가 맞물려 나타난 구조적 문제다. 특히 10대는 정치적 사회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라는 점에서, 이들의 극단화는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직면한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 청소년의 정보 습득 경로는 ‘레거시 미디어’가 아니라 ‘플랫폼 알고리즘’에 의해 지배된다. 유튜브, 숏폼 영상, 익명 커뮤니티는 검증 여부보다 반응성과 정서적 자극을 기준으로 콘텐츠를 선별한다. 이 과정에서 극우적 담론은 ‘금기된 진실’, ‘주류가 숨기는 이야기’라는 포장을 통해 높은 확산력을 획득한다. 문제는 이러한 담론이 사실과 의견, 분석과 선동의 경계를 흐린 채, 정보가 아닌 ‘사실처럼 보이는 주장’의 형태로 소비된다는 데 있다. 

‘극우 콘텐츠’는 대개 단순한 구도를 취한다. 세상은 ‘우리’와 ‘적’으로 나뉘고, 복잡한 사회 문제는 특정 집단이나 이념의 책임으로 환원된다. 비판적 사고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이 단순함에서 강한 정서적 해방감을 느낀다. 성적 경쟁, 불안정한 미래, 사회적 소외 속에서 극단적 메시지는 자신이 ‘진실을 아는 소수’라는 착각과 정체성을 제공한다. 그 결과 혐오와 배제가 신념으로 굳어지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다양성과 공존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잘못된 미디어를 보고 배운 사상은 청소년들에게 큰 주제거리다. 청소년들은 sns에 확산된 가짜뉴스들을 보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친구들에게 확산시키며, 하나의 ‘또래 문화’가 형성 된다. 당장 학교 복도에만 나가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을 조롱하고있다.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스스로 판가름 못하고, 사회를 ‘좌’와 ‘우’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재단하며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복잡한 정책 논쟁과 가치의 스펙트럼은 사라지고, 모든 사안은 진영 대결의 문제로 환원된다. 청소년들은 각 이슈의 맥락이나 근거를 검토하기보다, 발언의 내용보다 발언자의 ‘편’을 먼저 판단하도록 학습된다. 

이러한 인식이 고착될 경우, 합리적 토론과 다원성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 사회의 토대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현재의 교육 체계는 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교육은 여전히 정치·사회적 쟁점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영역’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공백은 중립이 아니다. 제도권 교육이 침묵하는 사이, 청소년의 인식은 온라인 극단 담론에 의해 형성된다.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결과적으로 가장 공격적인 메시지에 사고의 주도권을 넘기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심적 대안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제도화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가짜뉴스를 구분’하는 기술도,  정보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닌, 정보를 의심하고, 비교하고, 맥락 속에서 해석하는 능력이다. 누가 이 메시지를 만들었는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무엇이 생략되었는지를 묻는 훈련이 필수적이다. 이는 민주 시민 교육의 핵심 요소이며, 국어나 도덕 교과의 부록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과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특히 정치·사회 콘텐츠에 대한 교육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는 오히려 극단적 주장에 면역력을 기르지 못하게 만든다. 중립은 침묵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검토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학교는 안전한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하며, 교사는 정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가정과 사회 역시 역할에서 자유롭지 않다. 청소년의 온라인 활동을 도덕적 문제로만 접근하는 태도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이해와 대화, 그리고 신뢰 가능한 공적 정보 환경의 구축이다. 공영 미디어와 언론 또한 ‘자극적 갈등 구도’를 재생산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청소년 세대가 접근 가능한’ 설명과 맥락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을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개인의 인식에 그치지 않는다. 극우화된 청소년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타협과 토론보다 적대와 음모에 익숙한 시민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적 신뢰를 붕괴시키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지금의 10대는 곧 사회의 중심 세대가 된다. 이들의 세계관은 곧 사회의 미래다. 

청소년 극우화는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방치해 온 디지털 환경과 교육의 빈틈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지금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훨씬 더 큰 사회적 갈등으로 돌아올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민주사회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토끼풀은 이 방어선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