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어떤 세계에 살아가고 있나"

언론탄압 특집호 시민기고 - 김주영

나는 꽤나 별난 학생이었다. 학생답지 않게 지역사회에 관심이 있었다. 전국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행사 기획팀도 도맡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원탁토론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토론의 주제는 매번 바뀌었다. 2018년 3월 1회 주제는 이러했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고2, 울산시 청소년의회 출범을 위한 조직위 활동을 했다. 청소년들의 자치 참여 목적이었다. 레퍼런스로 참고한 국내외 청소년 의회 모델을 조사했다. 워크숍을 가서 조례안을 다듬었다. 시의회 앞에 줄서 반대하는 사람들에 우려가 되기는 했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내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의회에서 공청회를 진행했다. 공청회장은 욕설 섞인 고성이 난무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 학교밖청소년, 자문위원 선생님들을 향한 정신 차리라는 고함, 사람에 휩쓸려 반대 글자를 큼지막하게 적은 피켓도 구겨졌다. 발제자 청소년이 목소리를 냈음에도 말을 끊고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훈계가 이어졌다. 

마이크로 통제가 되지 않던 고성 때문일까 앳된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의견차를 좁히려는 노력도 없었다. 열여덟 먹은 내 의지는 부모님, 선생님의 의견으로 탈바꿈되었다. 주변 어른들이 나를 조종하는 거라며. 

수 년이 흘렀고 나는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학교-일-집을 오가며 먹고 살기 바쁜 틈새, 복에 겨운 질문들을 곱씹는다. 18-19년의 토론, 주제에 대한 답은 아직까지 미결이다. 나는 그 때와 똑같은 고민을 한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아가고 있나요?” “이 세계에 대한 나의 책임은 무엇일까요?”

제때 매듭 짓지 못한 의문들은 내 질문의 본질이 되었다. 침묵한 적이 없는데도 지워진 기억, 나는 청소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나의 생각들은 나이를 먹고서야 내 이름 석자 적힌 명찰을 달았다. 

세월이 지나 당당함보다는 두려움이 많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청소년이었던 나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 

누구는 정해진 데시벨 아래서도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누구는 책임을 위해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들의 변함없는 질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외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