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토끼풀 만세

차원 (교육언론[창] 기자)

민주주의를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제도나 규정의 변화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화는 구조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어지는 자격이 아니라, 배우고 익혀야 하는 습관이다. 그렇다면 그 민주적 습관은 어디서부터 길러져야 할까. 바로 학교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공간을 넘어,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고 조율되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많은 학교는 여전히 ‘질서’를 이유로 학생의 의견을 통제하거나, 다수의 목소리만을 ‘정답’으로 받아들인다. 토론 수업이 있다고 해도, 어떠한 결론을 향해 안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교사들이 진정 자유로운 토론을 이끌기 힘든 제도적 고충이 있다는 것도 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이 사회로 나갔을 때, 타인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논리를 펼치는 능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학교 민주화는 단지 교장 선출권이나 학생회의 권한 문제로 국한되어선 안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비판적으로 의심하며 논리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친구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며 설득하려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사회의 첫걸음이다.

민주주의는 합의의 정치이고, 그 합의는 비판과 토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다름’을 불편해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근거와 논리로 탄탄하게 구축하기보다 진영논리에 종속되거나 ‘그냥 다들 그렇다’며 다수의 의견에 기대는 태도가 익숙하다. 학교가 이런 사회의 축소판이라면, 사회 역시 그 관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나는 학교가 ‘민주적 말하기’의 훈련장이자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주장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근거는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어야 하며, 의견의 다수결보다 논리의 설득력이 우선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이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쌓을 때, 우리는 비로소 민주적인 사고를 몸으로 배우게 된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시민이 없는 사회,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판과 토론, 합리적 판단의 힘은 어릴 때부터 길러진다. 학교가 그런 훈련의 장이 될 때, 우리는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진짜 성장을 경험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먼 이상이 아니라, 매일의 교실에서 시작되는 최소한의 습관이다. 그리고 그 습관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고, 청소년 독립 언론 토끼풀이 가진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