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유감
언론탄압 특집호 시민기고 - 핫킨
우리 부모님 나이대에 크게 유행한 음악 그룹이 있다. 여러분의 부모님께 '서태지와 아이들'에 관해 묻는다면 열 분 중 여덟 분은 화색을 띠고 그 시절을 추억할 것이라 감히 장담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앨범에는 《시대유감(時代遺憾)》이란 제목의 곡이 실려있다. 가사가 참으로 인상적인 곡이다. 그 가사가 권력에 의해 한 번 지워졌단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곡이 나올 당시는 김영삼 정부(문민정부)가 막 임기의 중반 정도에 다다랐을 즈음이다. 1994년엔 한강의 멀쩡해 보이던 다리가 가라앉듯 무너지고, 1995년엔 멀쩡해 보이던 백화점이 주저앉았다. 수십 명이, 수백 명이 비명횡사했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무능했다. 브라운관 너머의 잘생기고 노래 잘 부르는 연예인 서태지가 아닌, 브라운관 너머의 속보를 바라보던 청년 서태지는 분노하며 가사를 써 내려갔다. 그것이 《시대유감(時代遺憾)》이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브라운관 바깥의 현실을 고발한다는 게 참으로 못마땅하셨나 보다. 곡은 곧바로 정부의 사전검열에 걸려 가사 일부를 삭제할 것을 지시받는다. '일부 구절이 현실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청년 서태지는 참으로 '서태지다운' 당돌한 화답을 보낸다. 가사를 모조리 지워버린 것이다.
이것은 곧 음악 사전검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목소리가 오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96년, 음악 사전검열 제도는 폐지되었다.
나는 《토끼풀》이 겪는 고난을 저만치에서 바라보며 《시대유감(時代遺憾)》을 떠올렸다.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곡이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했듯, 《토끼풀》도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했다. 곡이 권력의 탄압을 받았듯, 《토끼풀》도 권력의 탄압을 받았다. 심지어 곡이 가사를 모조리 들어내면서 저항했듯, 《토끼풀》 또한 1면을 백지로 발행하며 저항했다. 너무도 형편이 비슷하다.
권력의 압제는 30년이 흐르든, 300년이 흐르든 정녕 사슬이 끊어지지 못하나- 하며 크게 슬펐지만, 그럼에도 300년 전의 누군가가 사슬을 끊었고, 30년 전의 누군가가 사슬을 끊었듯, 지금 《토끼풀》을 옭아매는 사슬이, 청소년을 옭아매는 사슬 또한 끊어지리라고 나는 확실히 알고 장담할 수 있기에 슬픔이 멎을 수 있었다. 그 사슬을 끊는 주체가 《토끼풀》이 되리라는 것도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시대유감(時代遺憾)》의 가사 일부를 인용하며 총총 마친다.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야." 그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