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감,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거부권 행사

“교육에 대한 정치적 폭력 멈춰야”

서울교육감,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거부권 행사
정근식 교육감과 조백기 학생인권옹호관이 재의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문성호 기자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지난달 16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에 대해 법적·절차적 위법성을 지적하며 공식적으로 재의를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5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정근식 교육감을 비롯해 학생, 교사 등 교육공동체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거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정 교육감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온 최소한의 제도”라며, 이를 일방적으로 폐지하려는 시도를 “교육에 대한 정치의 폭력”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근식 교육감이 5일 기자회견에서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문성호 기자

“헌법·상위법 위반·대법원 결정 기속력 무시”

교육청은 이날 재의요구의 핵심 사유로 ▲헌법상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 ▲법령 위반(상위법 위반) ▲공익 저해 ▲절차적 하자를 꼽았다.

특히 이번 폐지조례안이 절차적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서울시의회는 이미 법원으로부터 효력이 정지된 폐지안과 ‘완전히 동일한 내용’의 주민청구안을 다시 상정해 의결했다. 교육청은 재의요구안을 통해 “이는 사법부의 심사를 잠탈(회피)하려는 것으로, 법치주의와 권력분립 원칙을 훼손하는 중대한 위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교육청은 조례 폐지가 교육감의 고유 권한인 행정기구(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교육센터) 설치권을 침해하여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등 상위법을 위반한다고 설명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이 요구하는 인권 보장 의무를 후퇴시킨다는 점도 재의요구의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과 직원들이 재의요구안을 시의회로 전달하고 있다. 사진 문성호 기자

“의결 기한 지난 ‘지각 처리’… 명백한 무효”

교육청은 이번 폐지안이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이 정한 의결 기한을 초과하여 처리되었으므로 ‘당연무효’에 해당한다는 새로운 법리적 쟁점도 제기했다.

법률에 따르면 주민청구 조례안은 수리된 날로부터 최장 2년(1년 연장 포함) 내에 의결해야 한다. 시의회는 집행정지 기간을 제외하면 기한이 남았다고 주장했으나, 교육청은 “법원은 집행정지가 의회의 심사·의결 권한 자체를 정지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며, 2025년 11월 26일로 의결 기한이 만료되었음에도 12월 16일에 의결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못 박았다.

정근식 교육감이 기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문성호 기자

학생 당사자 “인권은 흥정 대상 아냐… 교권과 대립하지 않아”

학생 당사자의 호소도 이어졌다. 발언대에 선 한성여자중학교 3학년 장효주씨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년 동안 학생인권조례를 지켜달라고 발언해왔지만, 어른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장씨는 폐지 찬성 측이 주장하는 ‘교권 붕괴’ 논리에 대해 “체벌 금지와 폭력 예방을 말하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가”라고 반문하며, “학생 인권을 공격하면서 교권을 이야기하지 말라. 인권은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넘겨주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례 폐지는 머리 길이와 양말 색으로 벌점을 매기던 과거의 폭력적인 학교로 돌아가라는 것과 같다”며 “학생의 인권을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근식 교육감은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발언에 대해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을 보여주었다”며 “어른들이 신뢰할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학생들이 5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문성호 기자

교육청 “재의결 시 대법원 제소 불사… 끝까지 대응”

정근식 교육감은 “교권 보호와 학생인권 보장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것”이라며, 시의회가 재의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의결을 강행할 경우 대법원 제소 등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아울러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과 최교진 교육부 장관에게도 공식 서한을 전달해 정부와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다.

서울 학생인권조례의 존폐를 둔 갈등은 교육청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향후 시의회의 재의결 절차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장기적인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 폐지조례안> 재의요구안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