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또 폐지..."야만적 행태"
정근식 교육감, "재의요구권 행사하겠다" "학생인권법 제정 촉구"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다시 폐지됐다. 서울시의회는 어제(16일) 오후 2시, 제333회 정례회 제4차 본회의를 열어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의결했다. 재석의원 86명 중 찬성 65명, 반대 21명이었다. 반대는 전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고, 찬성은 전부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질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후퇴”라는 전병주 의원, “아름답게 지켜가야 할 너무나 보편적인 상식”이라는 박유진 의원의 토론도 다수당인 국민의힘에 의해 가로막혔다. 서울시의회는 국민의힘 75명, 더불어민주당 35명으로 국민의힘이 과반 이상이다.
앞서 지난 11월 17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기습 상정해 통과시켰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성별·종교·나이·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학생 자치활동 보장과 학생인권센터 설치 등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1만 서울시민이 참여한 주민 발의로 제정돼 지금까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지키고 있다.
“합의 없이 직권상정”
한편 학생인권조례는 지난해 한 차례 폐지된 이후 대법원 소송 과정에 있었다. 이번 발의된 조례안도 지난해 폐지된 것과 사실상 동일하다. 당시 교육감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지만, 시의회에서 또다시 의결됐다. 이에 대법원은 교육청이 신청한 집행정지를 지난해 7월 인용해 조례 폐지 효력을 정지시켰다. 본안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1년 반 만에 동일한 취지의 폐지안을 다시 처리하면서 ‘사법부 기능 무력화’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상정 과정도 논란이다. 이번 폐지안은 여야 합의 없이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했다. 성흠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은 <한겨레>에 “여야 협의 없이 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했고, 반발하는 차원에서 민주당 시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지거나 불참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 맞불 집회… “날치기 규탄” vs “원조교제 못말린다”
본회의 시작 30분 전부터 시민단체들이 서울시의회 앞에 집결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 등 인권단체 및 진보정당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 본회의 날치기 통과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재차 폐지한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장효주 학생은 “국민의힘이 특정 혐오 세력의 표를 얻기 위해 학생의 인권을 재물로 삼고 있다”며 “음모론과 억측”이라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 김숙영 공동대표도 “학생의 존엄과 권리를 지우겠다는 선언이며, 교육을 거꾸로 되돌리겠다는 폭력적인 정치 행위”라고 했다.


학생 인권을 법제화하는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수영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는 “이번 조례안의 표결 결과와 무관하게 국회에 조속한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합니다. 이런 참담한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윤명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장도 “존중 없는 교육은 통제만 남기고, 두려움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결코 민주사회 시민을 길러낼 수 없다”고 호소했다.

반대편에서는 ‘서울시학생인권조례폐지범시민연대’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전국교육회복교사연합 육진경 대표는 약 50분간 이어진 발언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자기 표현을 마음껏 못하게 하는 독재법” “원조교제를 못 말린다”등 혐오 발언을 계속했다. 명지대학교 미래교육대학(평생교육) 법무행정학과 신효성 겸임교수 등 연사들도 나와 발언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오후 3시경 가결되자 양쪽 시민단체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폐지범시민연대’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우리 아이들이 살았다”고 울부짖었다. 인권단체들과 진보 정당들은 “명백한 정치행위, 권력남용”이라고 탄식했다.
정근식 “재의요구권 행사” “학생인권법 제정 촉구”도
본회의가 끝난 후 4시, 정근식 교육감과 청소년들이 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근식 교육감은 “오늘의 폐지 의결은 교육 공동체의 상호 존중과 협력의 기반을 허물어뜨렸다”며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우리 헌법이 보장한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침성, 그리고 평등성이라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정 교육감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학생인권법 제정을 포함한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주시길 촉구한다”고도 했다. 서울시교육감이 학생인권법 제정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의회 김인제 부의장, 성흠제, 이소라, 전병주, 박유진, 박강산 의원도 함께했다. 김 부의장은 “학생들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규정을 어른들의 정쟁 수단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호소했고, 이소라 의원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청소년특별분과 최재혁·허율·신승호 청소년도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의원들을 규탄했다. 허율 청소년은 “청소년들은 이러한 야만적 행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근식 교육감은 기자회견 이후 서울시의회 앞 청소년 농성장을 찾아 청소년 활동가들을 격려했다. 아수나로 수영 활동가는 이 자리에서 정 교육감에게 “농성장을 방문해 주어 고맙다”라며 “학생인권법 제정이 필수다.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이 아직 심리 중인데도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를 기습 상정해 폐지했다. 지난해 한 차례 폐지되었을 때도 교육감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고 소송까지 이어진 만큼, 이번에도 폐지안 가결에 따른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