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극우화' 매도보다 설득을!
극우 청소년, 일방적 설교보다 동등한 설득이 필요합니다 - 김신혁(고1)
김신혁은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문학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해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 벌써 1년가량이 지났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윤 대통령의 탄핵과 6월 대선, 그리고 조은석 특별검사의 이른바 ‘내란특검’이 180일간의 조사를 마치는 등의 일이 존재했다.
내란 특검의 최종 결과 보고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반대자를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2023년 10월 이전부터 계획되었다고 한다. 내란특검에 의해 총 27명의 비상계엄 종사자가 추가 기소되었으며, 접수된 사건 총 249건 중 215건이 처리되었다.
그럼에도 인터넷 상에서는 ‘극우 내란 세력’이 세를 불리고 있다. 왜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그 이유는 일부 정치권이 비상계엄 사건을 '청산의 대상'이 아닌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 아직까지도 필자의 정치관은 한때는 ‘윤 어게인’에 동조했을 만큼 강경한 보수 성향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필자는 12.3 비상계엄이 헌정질서를 무력화하고 입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 즉 내란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필자는, 최근 방영된 MBC <PD수첩> 비상계엄 특집편을 보면서야 비로소 비상계엄의 폭력성과 불법성에 대해 ‘명확히 인지’했다. 거꾸로 말하자면 곧, 그 이전까지는 폭력성과 불법성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독자 대다수는 이 대목에서 ‘그때 직접 경험했으면서,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맹세코 과장된 이야기나 거짓말이 아니다. 이 지점을 연령대에 따른 정치지형과 연결지으면 상당히 의미있는 가설을 도출해낼 수 있다.
연령대의 측면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강성 보수 지지층은 크게 60, 70대 ‘산업화 세대’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급부상중인 10, 20대로 분류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 국면 당시 ‘산업화 세대’가 태극기 시위를 주도했던 것과 대조되도록,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탄핵 반대를 주도했던 건 10, 20대였다. 어떤 면에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셈이다.
반면에 강성 진보 지지층은 40, 50대 ‘민주화 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이 무엇일까? 바로 ‘과거 비상계엄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의 여부이다.
대학가에서 데모를 하며 최루탄 연기를 맞아본 40, 50대는 비상계엄이 어떤 의미인지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반면에, 젊은 세대는 비상계엄, 군부독재라는 단어를 한국사 교과서에서, 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에서 간접적으로 본 적밖에 없다. 이들은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직접적인 인명/재산상의 피해를 목격한 적도, 이로 인해 헌법상의 권리와 자유가 억압된 경험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10, 20대도 초중등교육 12년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배워왔기에 ‘정당하지 않은 비상계엄이 나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실제로 12.3 비상계엄 당시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거의 대체로 계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경험을 ‘기억한다’는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기억은 결코 객관적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주관적으로 해석되며 왜곡되기 마련이다. 민주화 세대에게는 비상계엄과 관련된 폭력적인 기억이 트라우마이자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반면, 10, 20대에게는 조용했던 계엄령이 쉽게 잊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 일컫는 ‘극우 청소년’들이 12.3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것이 과연 입법부 무력화와 윤 대통령의 종신적이고 배타적인 권력 획득을, 내란을 지지하는 것일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인식 속에서 12.3 비상계엄은 내란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 계엄은 그저 부정선거 의혹과 입법부의 압박에 대한 ‘다소 과격한 정치적 퍼포먼스’일 뿐인 것이다. 이들은 계엄의 폭력성과 불법성이라는 심층적 맥락을 세대 간 경험을 통해 충분히 전달받지 못한 채, ‘입법독재’와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는 표면적 명분만을 접해왔다.
그 결과 계엄은 헌정질서 파괴가 아닌 정치적 대응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인식이 계엄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이버 내란’, ‘MH세대’와 같은 폭력적 워딩을 언급하며 청소년 극우화 현상 전체를 내란세력으로 매도하려는 범여권 지도부의 대응은 적절하지 못하다.
현재 범여권은 계엄 사태를 일으키는데 기여, 부역한 실질적 주동 세력을 좁히고 처벌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내란동조라는 포괄적인 정의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와 그 지지층마저도 포함시키는 정치적 유용을 보여주고 있다.
‘사이버 내란’의 일례로 제시되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고인모독 등은 분명 지탄받아야 할 극우적 현상이 맞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12.3 비상계엄의 기획과 실행에 어떤 실질적 기여를 했는지 구분해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내란이 극우의 한 갈래일 수는 있으나, 극우 전체를 곧바로 내란으로 환원하는 것은 전후관계를 혼동하는 일이다.
결국 청소년·청년 극우를 곧바로 내란 동조 세력으로 규정하는 접근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내란의 실행 주체라기보다, 왜곡된 정보 환경 속에서 극우적 담론에 노출된 집단에 가깝다.

필요한 것은 포괄적 처벌이나 낙인이 아니라, 비상계엄이 왜 헌정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였는지, 그 불법성과 폭력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다. 내란의 책임은 책임자에게 엄밀히 묻되, 사회적 설득의 대상까지 함께 처벌의 범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자에게 <토끼풀> 문성호 편집장의 “'윤어게인' 만나 밥 한끼...희망 보였다” 기사는 매우 의미있게 다가왔다. 기존 정치권 담론에서 극우 청소년을 비정상, 배제와 처벌의 대상으로 보아온 것과는 달리 극우 청소년을 대화와 설득의 대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방적 대상이 아닌 동등한 주체로서 다뤄준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타협을 통해 기존의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며 지지층 결집만에 힘쓰던 ‘파국의 정치’와는 달리 진정한 의미의 탈극우화와 사회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정상화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