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는 토끼풀들에게
이청아 선생님(2024년 연신중학교 토끼풀 담당교사)
처음에 너에게 기고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 안 그래도 없는 글재주인데 도통 무슨 주제로 써야할지 떠오르지가 않더라. 오랜만에 토끼풀 사이트를 들어가 누가 누가 글을 보냈나 살펴봤는데, 어느 당 대표부터 초등학생까지도, 나를 둘러싼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멋진 사람들의 글이더구나. 그런데 그 속에 정작 너희와 이 사태와 가장 맞닿아있는 교사들의 글은 많지 않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나는 많은 선생님들이 너희를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 왜 너희에게 큰 보탬이 될 글 한 줄 보내기를 주저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그건 바로 교사인 나조차도 이 지긋지긋한 학교에서 위태롭게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야.
2024년 3월 너희는 자율 동아리로 신문부를 만들고 싶다며 나에게 지도교사가 되어달라고 찾아왔지. 육아라는 격무에 시달리던 나를 따라다니며 이건 온라인으로 활동하는 동아리이며, 절대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던 달콤한 멘트들을 너희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간택당한 나는 한 달 만에 국회의원 사무실로 출장을 가보고, 결국 그해 마지막까지 교장실에 가장 많이 불려다닌 동아리 지도교사가 되어버렸다. 교무실의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너희가 등장할 때마다 또 무슨 사고(?)를 쳤을까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너희가 가져오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그 주제의식과 기사의 수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교내 장애학생 괴롭힘, 학교 공사 등 학교에 대한 기사부터 은평구내 도서관 부족 문제 등 지역 문제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놓인 교통비 할인 사각지대까지 조명하며, 어른들이 놓치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청소년의 시선으로 지적해주었지.
그런 훌륭한 너희에게 학교는 무엇을 해줬을까? 그건 바로 1년 활동을 끝으로 교내 자율 동아리 폐지라는 선고였어. 학교에서는 각종 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학교 밖으로 너희를 내몰았고, 나조차도 차라리 밖에서 활동하면 간섭이 덜할까 하는 마음에서 비겁하게도 그 생각에 동조했다. 내가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면서도 그 찜찜하고 답답한 마음을 풀 길이 없었는데 고맙게도 너희는 알아서 잘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전출 간 학교에도 한동안 신문을 보내주었지. 내가 몇몇 선생님들을 붙잡고 자랑도 했었단다. 한쪽에서는 성찰하고 탐구하는 IB 학습자를 기르니 어쩌니 하며 국제바칼로레아 교육과정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며, 정작 그 모범이 되는 너희는 학교 밖으로 내몰다니, 이 나라의 교육정책이 이 얼마나 모순된 헛바퀴질인가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너희, 그리고 어쩌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전국의 토끼풀들아. 미안하지만 나는 학교가 변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때 추모식을 하던 내 동아리 아이들이 ‘정치적 행위’라며 교장실에 끌려갔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뭐가 많이 달라졌을까? 글쎄, 학교는 여전히 구닥다리 체제 속에서 뻔한 담론들만 교육하고 있고, 모든 교육활동들은 ‘문제의 소지 없는,‘ ‘책임지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개별 학교나 관리자 개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거대한 사회 구조 안에서 학교는 한낱 때리기 좋은 동네북일 뿐이고, 교사들은 더 많은 업무와 민원에 지쳐가고 있거든. 당장 나조차도 학교가 변하길 바라는 것보다 내가 그만두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만 하고 살고 있단다. 그래서 너희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미안할 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학교라는 벽을 넘어서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구나. 끊임없이 바깥 세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지. 내가 갇힌 그 체제 안에 너희를 가둘 수는 없을 거야. 아마도 타협하지 않고 더더더 성장해서 날개를 달고 날아가겠지. 내가 앞장서서 그 길을 인도할 수는 없지만, 항상 다치지 않게 잘 가고 있나 뒤에서 지켜보고 또 응원할게, 토끼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