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교복을 입는다

언론탄압 특집호 시민기고 - 이은정(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

인문계 고등학교는 수능을 향해 질주한다. 수능 전날 예비 소집일에 1, 2학년 학생은 일렬로 늘어서서 3학년 선배를 향해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학교 구성원은 수능 보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기를 바란다. 이 의식을 출정식(出征式)이라 한다. 군대를 연상케 하는 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의식은 전체주의와 능력주의로 철저히 점철돼 있다.

내가 일하는 학교는 방송국과 가까워서 이맘때쯤이면 촬영을 오는 게 관례인 것 같았다. A 교사는 출정식 전날부터 방송국이 올 예정이니, 학생들에게 교복을 잘 갖춰 입으라고 방송했다. 덧붙여 교복을 제대로 안 입은 게 걸리면 집에 안 보낼 거라고 협박했다.

다음 날 아침, 날씨가 엄청 쌀쌀했다. 학생 몇 명은 얇은 교복 재킷이 바람을 막아주지 않아, 코트든 파카든 후드 집-업이든 걸치고 나왔다. A 교사는 윗옷을 걸치고 나온 학생에게 실실 웃으며 당장 윗옷을 벗으라고 말했다. 그러곤 학생이 벗은 옷을 뺏어 자기 팔에 걸었다. 그는 교복을 입어야지 통일성이 있어서 카메라에 예쁘게 담긴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모두가 교복을 입게 됐다.

나는 이 현장이 너무 불편했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뭐라도 하지 못한 내가 너무 한심했다.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고 그 사람을 향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청소년은 어떤 모습을 하든지 존중받아야 한다고, 저건 청소년 인권 침해라고, 왜 아무도 말리지 않냐고 외쳤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상상에 불과했다. 현실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변명조차 구차한 방관자였다.

흔히 ‘교직’은 수평 사회라고 한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학교에서 가장 어린 나에게 계속 존댓말을 사용하는 데서 그 성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학교’ 자체는 수직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연차가 적을수록, 비정규직일수록 다른 구성원을 신경 쓴다. 이 구조 가장 밑에 청소년이 존재한다. 청소년은 교사 눈치를, 교사는 관리자 눈치를 본다.

이런 분위기에서 구성원은 자기 이야기 하기 어려워한다. 그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사라지거나 그대로 스며든다. 허가받은 서사가 아니면 학교 안에 존재하기 어려워진다. 허가받지 않은 서사는 학교 밖으로 밀려난다. 단일한 서사가 고이고 고이다 급기야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아무도 이 문제를 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도 학교는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