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이라는 억압에 맞서는 동지들에게

언론탄압 특집호 시민기고 - 황보현(가천대학교 재학생·'붕어빵천원에3개협회' 기수)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이 학교로부터 '불온 문서'로 낙인찍히고 탄압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저는 낯설지 않은 분노와 깊은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학생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그 모습이, 제가 재학 중인 대학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천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지난 윤석열 계엄 사태라는 헌정 유린의 위기 앞에서, 저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탄핵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그 대자보를 무단으로 철거했습니다.

학생지원팀에 정식으로 허가를 요청하자, 학교는 '정치적 색깔'이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습니다. 이를 불허한 학교 측의 이유는 명료했습니다. 만약 허가할 경우 "불필요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끼풀>을 억압한 신도중학교의 '불온 문서' 논리와, 저의 대자보를 막아선 가천대학교의 '정치적 중립' 논리는 정확히 같은 곳을 향합니다. 그것은 바로 비판하고 토론하는 학생의 목소리,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실천을 '위험'하고 '통제해야 할 것'으로 보는 권위주의적 시선입니다.

학교와 대학이 말하는 '중립'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가천대학교는 '중립'을 "그냥 의견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위기 앞에서 '의견을 갖지 않는 것'은 과연 중립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침묵을 통한 현상 유지, 즉 현실 권력에 순응하겠다는 가장 소극적인 형태의 '정치적 순응'일 뿐입니다.

학교는, 그리고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배우지만, 민주시민은 교실 안 이론이 아닌 광장에서의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왜 학생이 배운 것을 '실천'하려 할 때, 학교는 가장 먼저 '금지'와 '통제'를 꺼내 드는 것입니까? 이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민주시민 양성이 아니라 권위에 순응하는 방법을 훈련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토끼풀' 기자들의 취재와 보도야말로, 그 어떤 수업보다 훌륭한 민주시민 교육의 실천입니다.

<토끼풀>의 동지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중학교 교문 앞에서 억압받는 당신들의 목소리와, 대학 정문 앞에서 거부당한 저의 목소리는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대자보를 찢고 신문을 압수해도,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열망은 결코 틀어막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