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마을, 참 행복합니다
[홍동면 특별취재] 함께 농사짓고 함께 생각하는 민주시민들의 마을, 홍동
<토끼풀> 3명의 기자들이 첫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 문성호·이서찬·조준수 기자로 구성된 ‘홍동면 특별취재팀’은 1박2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머물며 홍동면 곳곳을 누볐다.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안 자고 풀무학교(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홍동중학교, ‘ㅋㅋ만화방’, 밝맑도서관 등을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길게 인터뷰한 사람들만 10명이 넘고, 오고가며 만난 사람들은 수십명에 달한다(홍동면 인구는 3천 명).
홍동면은 충청도 대부분 지역과는 달리 평균 연령이 상당히 젊다. 귀농한 젊은이들도 많고, 풀무학교를 졸업한 후 홍동에 눌러앉아 농사짓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마을 전체가 진보적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 협동조합이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 할머니 7명이 모여 농협 매장에서 반찬을 파는 협동조합까지 있다!
물론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다. 지난 21대 대선에서 권영국 후보의 득표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3.9%) 지역이다. 권영국 후보가 이준석 후보를 1표 차로 이기기도 했다. 전국으로 보면 권영국 후보(0.98%)와 이준석 후보(8.34%)는 득표율이 8배 넘게 차이가 난다.
청소년들도 “노무현 밈을 거의 보지 않는다(김한울 학생).” 전국에서 씨름하고 있는 청소년 극우화의 여파도 이 지역에는 거의 미치지 않았다니,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신기한 마을에서의 1박 2일 취재를 연작 기사로 담아냈다. 위 ‘지방시대, 홍동에서 답을 찾다’ 코너명을 클릭하면 다른 기사들도 전부 볼 수 있다. 청소년의 시각에서 치열하게 걷고 물은 기록이다.
〈토끼풀〉은 지난 6일과 7일 이틀간 충남 홍성군 동쪽 끝 홍동면에 다녀왔다. 홍동면은 인구 약 3,200명의 작은 마을로, 상위 행정구역인 홍성군 전체 인구가 약 10만 명인 것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서울 은평구 인구가 약 45만 명임을 감안하면, 홍동면은 정말 아담한 마을이다. 낯선 이의 눈에 비친 홍동면은 산과 실개천, 논밭이 전부인 평범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홍동면은 짐작과 달리 정말 역동적이었다. 홍동면은 대안 교육과 유기농업의 선두 주자다. 특히 세간에 잘 알려진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쌀은 홍동면의 특산품이자 자부심이다.
이곳의 매력은 유기농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마을 내 교류가 활발했던 덕분에 주민 자치도 매우 탄탄하게 자리 잡았고, 마을 운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기관들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강점 덕분에 귀농하는 젊은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면 단위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갓골어린이집, 홍동초·중학교를 비롯해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고등부·전공부)까지, 유치원부터 대학 과정에 이르는 교육 체계가 한 마을 안에 모두 갖춰져 있다. 이 덕분에 젊은 층뿐만 아니라 자녀를 둔 가정도 도시의 입시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자연 속 살아 있는 경험과 대안 교육을 선물하기 위해 홍동면으로 터전을 옮기고 있다.

홍동면 마을활력소의 서경화 전 사무국장은 마을을 지탱하는 세 가지 축을 이렇게 짚었다.
“하나는 협동조합, 하나는 마을교육, 나머지 하나는 유기농업입니다. 교육기관이 어린이집부터 초급 대학 과정까지 다 있는 것도 엄청난 메리트죠.”
그가 마을에서 교육이 갖는 의미를 설명할 때도 홍동면 주민들의 특별한 생각이 그대로 묻어났다. “주민들은 교육이 미래에 홍동면을 지탱해주는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농촌이 살기는 좋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모두 도시로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마을에 남아서 변화를 일으켜 가면서 마을 사람들도 ‘아, 교육이 중요하구나’하고 배운 것입니다.”

덕분에 홍동면은 서울의 입시 경쟁이 주는 삭막함 대신, 저마다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가는 길잡이로서 그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홍동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80년 이상 거주한 토박이 최성만·추정준 어르신도 만났다. 홍동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지난 세월을 이렇게 회상했다.
“50년대에는 나라가 많이 힘들어서 시골이 가난했어요. 그래서 어릴 때에는 공부도 못하고 죽도록 농사에만 매달렸죠. 그 시절부터 농사 짓는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노인들 빼고 다 (서울로) 올라갔어요. 젊은 사람은 누구나 다 사회를 경험하러 시골을 떠났지만, 서울에선 못 삽니다. 서울에서 산다는 게 참 답답해요. 여기는 공기도 좋고 트여 있어서 좋습니다.”
오래 전부터 전업농(농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농사를 지은 토박이들에게는 빽빽한 빌딩 숲보다 탁 트인 홍동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토박이 어르신들은 유독 홍동 '로컬푸드'에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홍동 로컬푸드는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복잡한 유통 단계 없이 마을 내에서 소비하는 직거래 체계다. 생산자가 매장에 직접 농산물을 진열하고 가격을 책정하며, 소비자에게는 신선한 먹거리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유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농가 소득을 높이고 소비자 물가를 낮추는 경제적 효과로 이어진다. 특히 홍동면은 유기농산물을 투명한 이력 관리를 통해 판매하여 먹거리 안전성과 지역 경제의 자립도를 동시에 높이고 있다. 어르신들은 "마을 입구에 위치한 로컬푸드 직판장에서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작물을 판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홍동면의 행정을 이끄는 서일원 면장을 찾아갔다. 먼저 홍동면의 특산물에 관해 물었다.
서일원 면장은 “브랜드라는 것은 단순한 상품의 가치가 아니라, 그 브랜드가 지닌 신뢰의 가치를 따져야 한다"며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홍동의 대표 특산물은 유기농 쌀이지만, 제가 생각하는 브랜드란 개별 품목의 품질을 넘어선 개념이다. 홍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친환경과 문화특구라는 이미지를 쌓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홍동에서 키운 것이라면 쌀이든 무엇이든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홍동의 유기농업 홍보 사업 추진 의지를 내비쳤다.
다음으로 유기농업이 특히 활발한 홍동면 문당리 문산마을에서 이선재 이장을 만나 농촌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선재 이장은 농촌의 장점으로 “시골이라 조용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고, 자연 생태계와 깊이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 “생활권 측면에서 보면 불편한 점이 많다”며, “마트에 가려면 2km 정도를 차로 이동하거나 직접 걸어가야 하고, 문화 활동을 자유롭게 누리기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장은 농촌 생활에서 더 큰 가치를 발견하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인간관계나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혼란이 많지만, 농촌은 오히려 그런 것들로부터 평안을 찾아가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연과의 교감으로 얻는 정서적 안정감이 가장 큰 이점”이라며, “이런 매력 때문에 홍동면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곳에 오면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동료들이 많아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서로 깊이 교감할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어 청년 농부들이 정착하더라도 전혀 외롭지 않다”며 농촌만이 가진 공동체의 힘을 강조했다.
주민들이 홍동의 자랑거리나 특산물을 꼽자면 하나같이 금평리에 위치한 평촌목장의 평촌요구르트를 꼽았다. 서경화 씨는 홍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평촌목장을 꼽기도 했는데, “상업적으로 소들을 기르는 곳에선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는데, 화창할 때면 언덕에서 소가 풀을 뜯어 먹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유기농 축산의 산물인 평촌 요구르트는 홍동의 특산물 중 하나"라고 전하기도 했다. 평촌목장은 자체적인 공장에서 유기농 축산법으로 기른 소들로 요구르트를 제작한다. 저렴한 단가로 마을에 유통하기 위해 소규모로 운영 중이고, 마을뿐만 아니라 지역 생협과 학교 급식 등에 납품하기도 한다.

유기농업이 활발한 문당리에서는 대표적 유기농법인 ‘오리농법’을 사용한다. 홍동면이 이렇게 오리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1976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일본 견학 중 아와지시마라는 섬을 방문한 것에 있다.
학생들은 그 섬에서 일생동안 농약에 오염된 농산물을 먹은 원숭이들이 신체적 기형을 갖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이후로, 농약으로 인한 피해는 원숭이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다가오고 있는 문제라고 느끼게 되었고, 그 이후로 유기농업을 시도하게 됐다. 지금은 ‘오리농법’ 뿐만 아니라 ‘우렁이농법’, ‘메기 농법’, ‘미꾸라지농법’ 등 다양한 유기농법을 개발하고 있다.

홍동면의 주민 자치 또한 마을 발전에 한몫했다. 마을 도서관 ‘밝맑도서관’은 풀무학교 설립자 이찬갑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학교와 지역 주민이 힘을 모아 지었다. 그 외에도 마을 출판사 ‘그물코’나 생활협동조합 등 마을 기관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특히 마을 주민들의 협동조합이 굉장히 활발하며 총 40개의 주민조직을 운영 중이다. 주민 자치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에서 ‘마실 통신’이라는 지역 신문을 펴내기도 한다.

청소년들도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일단 학원이 없다. 그래서 입시 경쟁 교육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다. 대신 초등학교와 중학교부터 민주주의를 몸으로 배운다. 홍동중학교 학생회장 출신의 최여울씨는 "얘기해야 한다 싶은 안건이 생기면 '다모임(학생·학부모·교사의 공론장)'을 연다"며 "모든 논의의 씨앗"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친화적인 학교 문화도 돋보인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다. '학교장 인사말' 대신 '학생회장단 인사말'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회장단 인사말'은 홍동중학교를 "개인의 역량을 발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학교" "다른 의견과 생각을 들었을 때 틀렸다 하지 않고 저마다의 빛깔이라 말하는 학교"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학교"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 학교와 마을의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교"라 설명하고, "이런 학교를 다닐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며 끝맺는다.
홍동중학교 유은주 학교운영위원장은 "3학년 민주시민 시간에 학생들이 '공공 프로젝트'로 버스 이동권 문제를 지적하며 군청을 방문한 적도 있다"며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농촌 하면 농약 냄새가 진동하고 어르신들이 힘없이 농사를 짓고 어린이 울음소리가 그친 침묵의 세상을 연상하는데 비해, 우리 마을은 자타가 ‘유기농업의 메카’라 부르며, 젊은이나 여성,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입니다."
마을 출판사 ‘그물코’에서 2010년에 펴낸 홍동면 책자의 '여는 글' 일부다.
홍동면의 표어는 ‘더불어 사는 마을, 생각하는 농민’이다. 80년 토박이의 손때 묻은 농기구와 청년 농부의 새로운 꿈이 만나는 지점, 그곳에 ‘더불어 사는 마을 생각하는 농민’이라는 홍동의 심장이 뛰고 있다. 홀로 독주하지 않고 함께 경작하며, 관행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하는 이들이 있기에 홍동면과 유기농업은 오늘도 푸른 생명력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