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원견명찰 - 황준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Photo by Roi Dimor / Unsplash

대한민국청소년의회에서 제16대, 17대 의장으로 활동하며, 나는 청소년과 사회가 마주한 여러 의제들을 직접 다뤄왔다. 여러 의제 중 가장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바로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우리는 언제나 평등과 포용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다름’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남아 있다. 물론 조금씩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만, 진정한 포용으로 나아가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오랜 기간 다문화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나는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절박한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태어날 때부터 법의 테두리 밖에 놓인 아이들, ‘출생등록조차 되지 못한 아동’ 말이다.

모든 국민은 태어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제도는 곧 한 아동의 ‘존재의 증명’이다. 공동체에 소속되었다는 최소한의 행복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도구인 것이다. 허나 우리 사회에는 그조차 없는, 법적인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래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두 조항이다.

1조: 아동은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을 말한다.
2조: 아동은 모든 종류의 차별로부터 보호받으며,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도 1991년 해당 협약을 비준한 국가로서, 국내에 존재하는 아동, 즉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의 권리와 복지를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괴리를 자랑한다. 2023년 감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출생미등록 외국인 아동은 4,025명에 달한다. 4,000명이 넘는 아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2025년 여름, 나는 필리핀 부모를 둔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다른 모든 아이들과 똑같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등록이 되지 않아 학교에 다닐 수도, 아플 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부모가 불법체류 신분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는 ‘존재’조차 기록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은 한국에서도, 모국에서도 출생등록을 받지 못한다. 부모의 적법한 신분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한국에서 출생등록을 신청할 수 없고, 경제적인 상황으로 모국조차 쉽게 돌아가지 못해 모국에서 등록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결국 그들은 두 나라 모두에게서 외면받은 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4,000명의 미등록아동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영국에는 약 20만 명, 미국에는 100만 명, 그리고 전 세계에는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여전히 출생등록조차 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유럽의 난민캠프, 미국 남부 국경, 동남아시아의 난민 정착촌에서도 수많은 아이들이 이름 없이 태어나고, 기록되지 않은 채, 그저 사회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미국 철학자 존 롤스가 제시한 ‘베일의 무지’라는 개념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베일의 무지’란, 공정한 사회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모른다는 가정 아래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즉, 내가 부자일지, 가난할지, 남성일지, 여성일지, 이주민일지 모르는 원초적 상황에서, 어떤 사회 제도가 가장 공정할지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베일의 무지’는 단순한 철학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법의 보호 밖에 놓인 미등록 아동들은 그 정의의 잣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존재이다. 현재 상황에서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죄가 없다.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바로 아동이다.

이제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는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행동으로 사회의 그림자 속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여러 국가들이 상호 간에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출생등록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교육과 의료 접근성을 높이며,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이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 그것이 곧 인권의 시작이다. 그 시작을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에게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