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폐지 풍파 속 ‘학생인권의 날’ 기념식 개최
"어른들 싸움에 학생 등 터진다" 우려 속출
지난 1월 26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강당에서 ‘제11회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14주년을 맞아 공포일인 1월 26일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행사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2년 제정돼 현재까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로 기능하고 있다. 성별·종교·나이·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학생 자치활동 보장과 학생인권센터 설치 등을 명시하고 있는데, 지난 2024년과 2025년 두 차례 폐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서울시의회의 폐지안 의결은 2024년 이미 한 차례 폐지된 것이 대법원에 제소돼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논란이 됐다.

“인권은 누가 터치할 수 없는 존재”
이날 행사에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윤명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장, 이소라·박유진·최재란 서울시의원 등 내빈이 참석했고, 우원식 국회의장, 최교진 교육부장관, 김영호·강경숙·서영교·한창민 국회의원이 축사를 보냈다.
정근식 교육감은 축사에서 “학생인권, 나아가 공동체의 인권은 우리 교육의 본질과 분리될 수 없다”며 “학생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학교가 안정적으로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지원과 책임 있는 행정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소라 서울시의원은 “오늘의 주인공은 여기 계신 우리 학생 여러분들”이라고 했고, 박유진 의원도 “첫 번째, 인권은 누가 터치할 수 없는 존재” “두 번째,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고 잘 살게 해주는 우리의 가치” “세 번째, 학생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미래고 대들보고 우리의 희망”이라며 세 가지를 강조했다.

문화예술 대안학교 예룸예술학교 예예무용단의 축하 공연과 표창장·감사장 수여식도 이어졌다.


‘학생인권조례 주요 조문 낭독’으로 행사의 대미가 장식됐다. 정근식 교육감을 필두로 학생참여단 일부 위원들과 서울 전곡초 교사, 이소라·최재란·박유진 서울시의원, 박경서 전 인권대사 등 행사 참석자들이 일렬로 서서 학생인권조례 제17조 ‘의사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조문들을 읽어내려갔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이 정근식 교육감에게 정책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정 교육감은 “학생들이 제안한 정책은 각 실무 부서에서 토론하고, 학생 참여단과 논의를 통해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서 최대한 빨리 학생들이 요청한 사안들에 대해서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정근식 교육감과 학생참여단 단원들의 ‘인권 나무’ 만들기가 있었다.

행사 전후 잡음…서울시의회 훼방도
한편 이날 행사 전후로 다양한 비판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행사 전에는 서울시의회 측의 행사장 변경 등 압력이 교육청 측으로 가해졌다.
서울시의회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다수로, 지난해 12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시키는 등 교육청과 갈등이 지속됐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면, 서울시의원들은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소속 주요 시의원 2명이 교육청 간부들을 부르는 등 장소 변경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에서 진행됐는데, 해당 장소는 서울시의회가 아닌 서울시청 소관이다. 행사 장소가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훼방을 놓은 것인데, 이에 교육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5일 낸 성명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준비한 학생인권의 날 행사마저 정치적 도구로 삼아 방해하려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출마를 선언한 강민정 전 국회의원도 25일 낸 논평에서 “시의회는 교육청의 정당한 행정 집행과 장소 사용을 허가하고 가로막는 상왕 기관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행사 당일에도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이 “학생 여러분은 학교 안에서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축전을 보냈다. 최 의장은 지난해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여야 합의 없이 직권상정해 논란이 됐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의 한 학생은 <토끼풀>에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도한 최호정 의장이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의 날을 축하한다는 축전을 보낸 것이 참 모순적”이라고 전했다.

행사장 난입에 중학생 사회자 마이크 강탈…학생들 ‘두려움’ 호소
행사 시작 전후로는 교내 성폭력 의혹을 제보한 뒤 전보됐다고 주장하는 지혜복 교사가 이끄는 ‘A학교 성폭력 사안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활동가들이 행사장 입구를 막거나 사회자 마이크를 빼앗아 발언하는 등 소동이 일어났다.
한 학부모단체 대표도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장에 난입한 활동가들을 비판했고, 몇몇 학생들도 볼멘소리를 냈다. ‘A학교 공대위’ 활동가들은 일부 교육청 관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정근식 교육감이 기념사를 시작하자 지혜복 교사와 피켓을 든 인원이 행사장으로 난입해 “A학교 문제 먼저 해결하라”고 소리쳐 행사가 잠시 멈췄다. ‘학생 주체 행사가 어른들 싸움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계속된다. 실제로 행사 당일 사회를 맡은 학생참여단의 중학교 3학년 학생은 <토끼풀>에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며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는 있지만 학생들이 주최한 행사에서 본인 쪽의 의견을 강압적으로 주장하려는 행동은 민폐”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 초등학생 위원들은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학생참여단에서 중등 위원을 맡은 한 학생은 “당시 행사 시작 전부터 행사장 난입과 구호로 학생참여단 초등부 위원들이 무서움, 두려움을 표했고 이에 사회자 인도 하에 로비에서 행사 시작 5분 전까지 (초등 위원들을) 보호했다”고 전했다.

“의전 과다, 대폭 줄여야”
행사 진행 방식에 불만을 표한 이들도 있었다. 한 학부모는 “‘인권나무 만들기’ 행사에서 학생들이 ‘인권 열매’를 전달해 교육감이 나무에 거는 행위 자체가 학생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고, 한 학부모단체 대표는 <토끼풀>에 “1시간가량 이어진 의전이 너무 길었다”며 “학부모들은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소개마저 거절했다” “다음 행사에서는 의전과 비청소년들의 소개, 인사는 대폭 줄이고 학생들의 의견과 이야기들이 대폭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풍파 속에서 치러진 이번 학생인권의 날 기념식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 ‘학생을 위한 학생인권의 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 내부에서는 ‘우리의 축제에서 어른들의 싸움만 벌어졌다’며 망연자실하는 여론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인권조례의 존폐 문제를 초월한 서울시교육청의 종합적인 학생 참여 정책이 필요한 이유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