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의 꼭대기에서 학벌주의를 이야기하다

'가방끈의 이슈' 좌담회 참석 르포 (윤건우 기자)

학벌주의의 꼭대기에서 학벌주의를 이야기하다

며칠 전 수능이 있었다. 

수능은 가히 국가적인 이벤트라 할 만하다. 학교가 쉬고, 비행기가 멈추고, 농촌에서는 트랙터 사용을 자제하자는 안내방송이 송출된다. 거리는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인다.

수많은 고3, 재수생, n수생들에게 가장 중요할 날일 수능은,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와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첫단추이기도 하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1등부터 463,486등까지 한줄로 나열되는 날. 누가 경기장에 입장하고 누가 입장하지 못하는지 결정되는 날. 서류상으로는 공정하면서도, 동시에 각종 교육인프라로 무장한 강남과 ‘좀 사는 집안‘의 자식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놀이터, 수능.

수능해서 출발해 대학과 직장, 지역과 교육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학벌주의. 그 학벌주의의 아성에 학벌 안팎에서 도전해온 사람들이 있다. 서울대저널과 투명가방끈이 그들이다.

서울대저널은 1995년 창간해 30년째 이어오고 있는 서울대의 독립 학생자치언론이다. 교육, 정치, 노동 등 대학 안팎의 현안을 다루는 시사지로, “잃어버린 강의실을 찾아서”, “가자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등 다양한 특집과 기사를 내왔다. 투명가방끈은 2011년 대학입시거부선언을 계기로 결성되어 14년째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다. 교육제도 개편, 대학 미진학자 커뮤니티 조성 등 학벌주의를 철폐하기 위한 운동을 펼쳐왔다.

13일, 수능이 있던 바로 그 저녁, 서울대저널과 투명가방끈이 <가방끈의 이슈>라는 이름 아래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 모였다. 학벌주의와 자치언론에 관한 이야기에, 필자도 토끼풀의 기자로서 직접 참석해 보았다. 


이대역 1번 출구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가니 건물 2층에 달린 카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계절의 목소리”, 좌담회가 열리는 장소였다. 2층으로 향하는 검은색 철제 계단을 올라가니 밝은 톤의 카페 조명이 주위를 밝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투명가방끈 활동가들과 서울대저널 기자들이 필자를 맞이해 주었다. <서울대의 이슈> 지다율 편집자가 나눠준 책자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금붕어, 레닌, 그리고 가자>를 손에 쥔 채 두 줄로 세팅된 의자에 앉았다.

7시가 되자 10여명 남짓의 참여자들이 마저 도착했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좌담회가 시작됐다. 지다율 편집장의 인사말 후, 김유민 전 서울대저널 편집장이 첫 발언을 맡았다.

“할 수 있는 말을 하려고 했다”

김유민 전 편집장이 말하고 있다.

2024년 서울대저널의 편집장을 맡은 김유민 전 편집장은 2023년 취재를 나갔다 “학생언론 관련 책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던 때를 회고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전 편집장은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의례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다음해 다시 만났을 때 ‘우리 책 언제 내냐’고 하시길래 놀랐다”며 출간에 얽힌 뒷배경을 이야기했다. 이어 “작업을 시작해서 초안을 쓰고, 계엄이 터지고 초안을 다시 쓰고, 해서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편집장은 서울대저널에서 활동하며 했던 고민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가끔씩 에타에 기사 후기가 올라온다”며 “서울대생이 (본분에 맞지 않게) 저런 기사를 쓰면 안 된다”와 “서울대생이니까 저런 (한가한) 말을 할 수 있는 거다”라는 두 종류의 비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 전 편집장은 “그럴수록 서울대저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며 지금까지 활동의 바탕이 된 철학을 밝혔다.

“서울대생 이미지를 탈피해야”

손원민 학원부장이 스케치북을 들어 보이고 있다.

다음 발언은 손원민 학원부장이 맡았다. 학원부는 교내 이슈를 다루는 서울대저널 부서다. 손 부장은 본격적으로 서울대 내의 학벌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계엄 이후 학교에 대자보도 많이 붙고, 굉장히 오랜만에 2700명 넘게 모이는 학생총회도 열렸다”며 반가움을 표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학벌주의의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지식의 전당인 서울대에서 탄핵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 등 여러 학벌주의적인 수사가 많았다”며, “'따지고 보면 학벌주의가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인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손 부장은 발언 도중 미리 준비해 온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스케치북에는 서울대의 탄핵운동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이 붙어 있었다. 손 부장은 “서울대생 몇 명을 모아 함께 ‘댓글읽기’를 진행해 보았다”며, “윤석열 후배다”,”‘지식인들이 외면하면 안 된다”, “내일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서울대생을 믿고 따를 것이다” 등 달렸던 댓글들을 소개했다. 그는 “처음에는 다들 댓글을 읽고 웃는 분위기로 진행됐다”며, “근데 읽을수록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대생의 이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손 부장은 “서울대생에게 주어진 이미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그 이미지에 대해 고민하고 해체해나가야 한다 말하며 발언을 마쳤다. 

“나의 일상과 그들의 현장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다”

천세민 편집장이 스케치북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천세민 편집장은 서울대 안 자신의 삶과 서울대 밖 현장의 차이에서 느꼈던 괴리감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 역시 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을 꺼내 들어 이야기를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한장한장 넘겨가는 모습이 마치 어릴 적 보았던 샌드아트 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

천 편집장은 “대선 국면 당시 ‘민주주의 특집호’를 냈는데, 그때 인터뷰하며 번호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대선 국면이 끝나고 일상을 살던 중, 인터뷰했던 사람들로부터 문자로 ‘울산 현대차 투쟁현장에서 사측이 폭력사태를 일으켰다’고 취재 요청이 왔다”고 말했다. 이어 “학기 중에 갑작스럽게 먼 거리를 내려갈 수 없어 취재하러 가지는 못했다”면서도 “나는 일상에 복귀했지만 투쟁현장에 있던 분들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에 심정이 복잡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계엄 전에도 계엄 아래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문구가 떠오르는 지점이었다. 

천 편집장은 이어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서울대생으로써 학벌주의를 비판하며 느끼는 모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부르는 별명이 있다”며, “그런데 서울대 입학 이후 나를 부르던 여러 별명들이 사라지고, ‘서울대’ 3글자만 남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역시 서울대’나 ‘서울대인데 그것도 몰라?’하는 호칭들을 들으며 서울대 3글자가 자신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밖에서는 서울대를 ‘지식의 전당’이라 부르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도 했다.

천 편집장은 “자신이 서울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 환경의 덕이 크다”라며 “친구들 중에는 그런 환경이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서울대에 못 들어온 친구들의 삶이 불행하냐 물으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며 “가끔은 정해진 길을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천 편집장이 도달한 결론은 “계급을 배반하라”였다. 그는 “가끔씩 친구들이 농담조로 자기 서울대 친구 있다고 말하며 ‘널 이용해먹겠다’라고 한다”고 말하며, “실컷 이용해라”고 답하고 싶다 말했다. 그는 “생일 때마다 ‘모든 23살의 생일파티’를 하려고 한다”라며 “서울대에 다니든, 서울대에 다니지 않든 다같이 모여 노는 행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연혜원 활동가가 농담하고 있다.

다음 발언을 맡은 연혜원 상임활동가는 가벼운 톤으로 농담하듯 말을 꺼냈다. 얼마 후 있을 후원주점을 위해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습하다 생겨버린 말투라고 했다. 

연 활동가는 “나는 대학에 대한 애정이 컸던 사람이다”라며, 대학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과거를 이야기했다. 이어, “지금 투명가방끈 활동하는 걸 그때 같이 대학 홍보대사 했던 친구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라며 농담을 던졌다. 

이어, “책 <서울대의 이슈>를 읽고 기자들의 서울대저널에 대한 애정을 느꼈다”며, “그게 서울대에 대한 애정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 활동가는 “사실 대학 내 자치기구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자치기구가 대학을 조금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대학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을 덜어주고 '견딜 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앞의 서울대저널 활동가들에게 답변하듯, 서울대생으로써 느끼는 윤리적인 책임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연 활동가는 “서울대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학벌주의의 정점에 서 있다는) 윤리적 책임감으로부터 해방되지는 못 할 것”이라며,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욕을 먹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답이다”라며 “차라리 욕할 기회를 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연 활동가는 최근 대학 밖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가 개설된 사례를 언급하며,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었다는 점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학의 모습과 맞닿아있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좀 더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열렸으면 좋겠다”라며 발언을 마쳤다.

“지방대 대학생들도 많이 찾아가고 싶다” 

공현 활동가가 말하고 있다. 이상 사진 윤건우

투명가방끈 공현 활동가가 마지막 발언을 맡았다. 공현 활동가는 “나도 활동하던 단체에서 신문을 만들어봤다”며, “기자들이 마감을 안 지켜서 편집장이 땜빵하러 다니거나, ‘여기는 돈 안 받는 비정규직 15명이 모인 조직이다’라는 농담 등 공감되는 대목이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공현 활동가는 대학 내 운동단체들의 쇠퇴를 언급하며, “과거에는 운동단체들이 의식화와 조직화라는 이름으로 하던 활동을 이제는 자치언론이 도맡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자보들을 보면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이고, 대학 내 민주주의에 관한 내용은 거의 않았다”며, “얼마나 운동사회가 망했으면 언론이 운동 역할까지 다 하겠냐”고 이야기했다. 

공현 활동가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투명가방끈이 대학 내에 충분히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며, “소위 ‘지잡대’(“지방의 잡다한 대학”의 줄임말로, 지방거점국립대를 제외한 지방대들을 낮잡아 부르는 말)에 다니는 학생들과 더 활동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모순 속을 살아내기

공현 활동가의 발언 이후, 참여자들도 직접 손을 들고 발언자들과 각자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나누며 좌담회를 마쳤다. 대부분 대학에서 활동하며 느끼는 어려움과 내적 갈등에 관한 고민이었다. 필자도 공교육을 떠나 대안학교를 다니며 했던 생각과 고민을 나누었다. 

<가방끈의 이슈> 좌담회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나는 ‘학벌주의의 꼭대기에 서서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데서 오는 모순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 요약할 것이다. 학벌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생으로써 느끼는 윤리적인 부담감, 그리고 학교가 학교인지라 가장 강하게 느낄 학벌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는지 잘 느낄 수 있었던 좌담회였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결국 모순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현 대입제도와 학벌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수능을 위한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 학벌주의의 수혜를 누리고자 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면서도 새벽배송 서비스를 즐기며, 동물복지를 이야기하면서도 동물을 착취해 만들어진 고기를 먹는다.

어쩌면 모순 없는 삶이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 연혜원 활동가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우리 삶이 모순으로 가득찼음을 인정하되, 그 속에서 사회에 대한 관심,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