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앞에서 멈춘 민주주의
김도현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장
그동안 정치, 사회적 이슈와 지역 사회, 교육과 학교 등 다양한 주제로 기사를 써온 청소년 언론 ‘토끼풀’이 지난여름, 학교 안에서 신문과 기자 모집 포스터를 나눠 주다가 압수를 당했다. 학교 측이 교육의 중립성과 교육활동 침해 여부,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학부모 민원 발생 소지 등을 염려하며 이에 문제가 되지 않는 유인물만 배포하게 허락한다는 자체 규정을 세우고 일방적 통보를 해온 것이다.
교육활동은 단순히 교과서만 공부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하고 사회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교육의 중립성을 핑계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면 이 또한 중립성이 아니라 정치적 편견이다. 특히나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나이나 신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학생이라는 이유로만 언론 활동이 막힌다면,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통제의 공간이 되고 만다.
이번 일은 학교가 여전히 학생을 ‘관리해야 할 사람’으로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폭력적인 방식이 12.3 내란을 이겨낸 우리 사회의 학교 현실이라는 것이 참으로 참담할 뿐이다. 학생의 목소리가 교문 앞에서 막히는 순간, 민주주의의 첫걸음도 멈추게 된다.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배운다면, 교문 안에서도 그 가치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학생이 학교의 주인으로 설 수 있으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먼저 학생인권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은 지역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지만, 상위법이 없다 보니 쉽사리 바뀌거나 없앨 수 있다. 인권은 교사나 학교가 ‘허락’해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진 권리다.
또 하나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여 학생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의 규칙이나 예산을 정하는 곳인데, 정작 학교의 주인인 학생은 빠져 있다. 학교의 규칙이 학생을 위한 것이라면, 그 결정에도 학생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가 없는 배움은 진짜 교육이 될 수 없다.
토끼풀이 만든 신문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청소년이 직접 세상과 이야기하려는 용기였다. 학교가 해야 할 일은 그 목소리를 막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침묵을 강요하는 학교에서는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없다. 학생의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학생이 학교의 주체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학교는 진짜 배움의 공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