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1년...'하나고'에서 살아보니

원견명찰 - 권재윤 (하나고등학교 1학년)

고교학점제 1년...'하나고'에서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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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고교학점제의 도입도 어느샌가 1년에 다다랐다. 필자는 현재 2009년생, 현 고등학생 1학년으로서 고교학점제의 1세대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동안 나는 고교학점제의 여러 문제점과 장점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우선 고교학점제와 5등급제의 도입 배경은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구조 및 직업 세계 변화, 감염병 유행 등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기존 9등급제의 상대평가 부담을 완화하고, 고교학점제와 연계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평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일단, 고1은 학교 지정 과목만을 수강하기에 실제로 대학교와 같이 학생이 직접 수강할 과목을 정하고 듣는 형태는 아니다. 그러한 형태의 교육과정은 고2와 고3에게만 적용된다. 이 점에 유의하고 읽어 주기 바란다.

눈에 보이는 성적 오르고 과목도 다양해져

5등급제로 얻은 장점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실제로 눈에 보이는 등급이 올랐다는 점이다. 기존 9등급제에서 상위 5~10%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이번 5등급제의 영향으로 1등급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기존이라면 4등급을 맞을 학생 중 일부는 5등급제에서 상위 34%까지에 해당하는 2등급을 맞을 수 있었다. 따라서 교육부에서 주장한 '상대평가 부담 완화'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로 인해서 학생들이 실제 수강할 수 있는 과목이 다양해졌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AI 기술 등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와 직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과목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진로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지만 놓고 본다면 기존의 9등급제와 교육과정보다 훨씬 괜찮아 보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고, 상대평가의 부담도 완화되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학생 입장에서 느낀 ‘진짜’ 고교학점제와 일치할까?

실제 대학 진학에 필요한 성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

우선 5등급제 체제에서 실제로 눈에 보이는 등급은 바뀌었지만, 성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대학교 진학 시에는 성적 말고도 적시되는 것이 있다. 성취도별 분포 비율, 과목 평균 그리고 수강자 수이다. 대학은 이를 바탕으로 기존 9등급제에서 이 학생이 받을 수 있는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렇기에 5등급제는 학생들에게 등급이 오른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을 수 있지만, 그건 고등학교에 한정되는 것이다. 대학교 입시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두 번째로는 실제로 들을 수 있는 과목이 많아지지도 않는다. 필자가 다니는 하나고등학교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로서 고교학점제 이전부터 99개 이상의 선택과목을 제공해 왔다. 선생님들은 십수 년 동안 교육과정의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기존 일반계 고등학교(일반고) 선생님들은 이렇게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

자사고 선생님들을 추어올리고 일반고 선생님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기존에 1개에서 2개의 과목을 맡던 선생님이 갑자기 4개 이상의 과목을 가르치라고 압박받는다면 과연 교육의 질이 높아지겠는가.

선생님들의 업무 비중도 매우 많이 늘어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쏟는 시간과 열정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되레 늘어날 것이다.

다양한 과목, 일반고에서 실현 어려워...'진로선택과목' 상대평가 문제도

세 번째로 '진로선택과목'의 평가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우선 일반선택과목은 고1 때 듣는 공통국어·통합과학, 수능 출제 범위에 포함되는 미적분l·대수·문학·화법과 언어 등이 포함되는 반면 진로선택과목은 일반선택과목보다 조금 더 심화되고 전문성이 필요한 ‘인공지능을 위한 이산수학’·‘기하학 과제연구’·‘AP* 세계사l’·‘고전역학’ 등이 해당한다.

고교학점제의 도입 취지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교학점제는 이러한 진로선택과목의 확대에 치중하고 있다. 생각을 해 보자. 진로선택과목은 일반선택과목보다 수강 인원이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심화적이고 세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본래 고교학점제를 기획할 때 이러한 진로선택과목을 확대해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듣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가 방식은 수강 인원 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평가가 되어야 옳다.

그런데 교육부에서는 기존에 절대평가였던 진로선택과목을 일반선택과목과 동일한 5등급의 상대평가로 나타낸다고 발표했다. 물론 일부 교육부 지정 과목에 한해서는 절대평가가 적용된다. 그러나 '지정 과목'도 3학년 2학기에만 존재하는 '역사로 탐구하는 현대 세계'·'금융과 경제생활'·'융합과학 탐구'만 있다.

이런 식으로 평가된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는 뒷순위에 두고 등급에만 의존해 과목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상대평가에서 수강 인원이 적다는 것은 성적을 받기 불리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없게 되고, 가장 인원이 많은 과목으로 모두가 따라가게 되어 수강인원이 없는 과목들은 폐강될 것이고 결국에 고교학점제의 진짜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교육 격차 완화'도 실패

네 번째로 고교학점제는 본래 주요 목표였던 일반고와 자사고의 교육 격차 완화에도 실패했다.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외대부고)·하나고등학교·민족사관고등학교 등 전국 단위 자사고들은 고교학점제 도입 이전에도 이미 자체적으로 '무학년 과목', '학생 개방형 교육과정' 등을 내세워 왔다.

준비도 안 된 일반고에서 이를 따라 한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또, 얼마 전 교육부에서는 '교육 격차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기존의 통합과목의 과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세특)의 글자 수 1000자 제한을 일반고, 자사고 모두 500자로 낮췄다. 잘못 짚어도 완전히 잘못 짚었다. 일반고와 자사고는 AP 과목이나 선생님의 수준 등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결국 학생부에 학생이 했던 연구나 교과활동들이 빠지게 되어서 되레 특이한 과목이 없는 일반고가 불리해질 가능성도 생겼다. 비유하자면 교육격차를 줄인 것이 아니라 ‘평행이동’ 한 셈이다.

단지 교육 측면에서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목적에는 단순 학습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에버렛 라이머 교수의 1971년 저서에 따르면 학교의 목적에는 △학생을 보호하는 기능 △사회적 역할의 선별 기능 △이론이나 원리 혹은 사상을 주입하는 기능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는 기능이 있다. 사회성 향상과 친구 관계 형성도 교육의 주 목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너무 일찍, 엉성하게 도입되었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 방식은 학생들의 과목 선택의 자율성을 저하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교육계에 건의하고 싶다. 첫째, 현재 상대평가로 바뀐 진로선택과목을 절대평가 과목으로 환원시킬 것. 둘째, 학생부의 글자 수 제한을 기존대로 환원시킬 것. 셋째, 교육과정에 있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

제대로 된 학습 환경에서 성적 부담을 받지 않고 공부해야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펼치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권재윤씨는 하나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으로, 고교학점제와 5등급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필자의 의견은 토끼풀의 견해와 배치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