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
학폭 가해자 397명 중 298명 불합격 처리... "경쟁자의 탈락 전제로 한 계산적 대응 강화될 우려 커"
‘학폭 감점제’란 학교폭력 가해 이력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제도이다. 정부의 학폭 근절 정책에 따라 2026학년도 대입부터 학폭 감점제가 적용되면서, 대입 전형에 학폭 이력을 반영한 397명 가운데 298명이 불합격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입시 전문가들은 상위권 대학의 경우 단 0.1점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는 만큼, 학폭 감점이 단순한 페널티를 넘어 실질적인 '합격 차단선'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학폭 감점제가 도입되면서 학교폭력 이력이 참고 자료가 아닌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교육부는 학폭 감점제를 의무화하되, 감점 수준은 대학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가해 정도가 중할 경우 ‘지원 불가’ 조치를 내리는 학교도 있었다. 학폭 조치 사항은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1호(서면 사과), 2호(접촉·협박·보복 금지), 3호(교내봉사), 4호(사회봉사), 5호(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9호(퇴학)로 나뉘며 학생부에 기재된다. 4-5호는 졸업 후 2년간, 6-8호는 4년간, 9호는 영구적으로 기록된다. 다만, 1-3호는 1회에 한해 기재 유보가 가능하고, 4-7호는 피해자 동의와 졸업 직전 심의 과정을 통해 삭제될 수 있다.
감점 수준이 대학별로 다르면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학폭 가해자들이 비교적 학폭 가해 이력으로 감점되는 정도가 경미한 대학에 지원해 합격할 수 있다는 거다. 교육부는 ‘입학생 선별은 대학의 자유영역이기 때문에 강제로 감점 수준을 높이도록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학폭 감점제 때문에 학폭 조치 결정 자체를 다투는 법적 분쟁이 잦아져 가해 학생의 처분이 늦어지면서 피해 학생의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입시 불이익이 너무 크다 보니 학폭 조치를 받은 가해 학생 측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송에 매달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반성' 대신 '변호'에 집중하게 되어 피해 학생과의 사과가 늦어지고, 정작 우선시되어야 할 '피해자의 회복'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학교폭력을 입시에 연관짓는 것보다는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피해자의 심리 회복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홍순희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학교폭력 조치 결과가 학생부에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일부 학폭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기보다 법적 다툼을 통해 학생부 기재를 무력화하려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라며 “고액의 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 대응을 지속할 수 있는 학부모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나 사회적 권력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이 과정에서 학폭 대응이 교육적 해결이 아닌 ‘권력 행사’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순희 지부장은 “학교폭력 사안이 입시에 직접적인 불이익으로 연결될 경우, 교육적 해결보다는 경쟁자의 탈락을 전제로 한 계산적 대응이 강화될 우려가 크다”고도 했다.
학폭 감점제는 피해자에 극심한 고통을 안긴 가해자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는 흐름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학폭 가해자라고 해서 입시에 불이익을 주며 대학 진학을 막는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관점도 있다. 인격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기에 ‘가해자’라는 낙인을 찍으면 가해 학생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할 기회를 주기보다, 사회적 진출 자체를 막아버림으로써 사회에 부적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학폭 감점제의 도입 취지는 가해자를 배제하는 데 있지 않다. 학생이 책임을 배우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학폭 감점제의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