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외침 : ‘학생의 표현의 자유’와 ‘교사의 정치 기본권’
정찬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
#장면1 – 20년 전
20여 년 전, 사립 고등학교에 임용되어 처음 맡은 업무가 교지 발간 사업이었음. 교지편집반을 구성하여 학생들과 함께 교지에 실릴 내용들을 논의하고, 특집기사로 ‘우리학교 학생 인권 인식 실태조사’를 기획함.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교지에 게재하려 하자, 학교 관리자가 학생들의 편향적이고 정치적인 내용이 포함되었다며 게재를 불허함. 교지편집반 학생들과 함께 학교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며 게재를 요구했으나, 결국 교지에 실리지 못하고 종업식에 별지로 학생들에게 배포함.
#장면2 – 10년 전
세월호 참사 1주기에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자는 내용의 교내 메신저를 교직원들에게 발송하자, 학교장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며 수차례 경고장을 발부함. 또한, 학교 신문에 교직 10년 근속 소감을 요청받아 입시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고등학생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위로하며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취지의 글을 작성했으나, 학교장은 정치적 색채가 드러난다며 게재를 불허함. 이러한 사안들을 이유로 그해 재단 내 다른 학교로 부당한 인사이동을 당하게 됨.
#장면3 – 현재
최근 서울 은평구 신도중학교 등에서 학생들이 직접 만든 신문 《토끼풀》의 배포를 ‘교육의 중립성 위반’, ‘교육활동 침해’, ‘학부모 민원’ 등을 이유로 금지되었으며, 이미 배포된 신문과 기자 모집 포스터가 압수됨. 이에 《토끼풀》은 백지신문을 발행하여 항의했으며, 청소년 인권 단체, 정치권, 교육 시민단체 등에서 학교 측의 언론 자유 침해와 표현의 자유 침해, 학생 자치 탄압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짐. 결국 학교는 공식 사과를 하게 되었고, 교육청은 학생의 의사 표현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기준 마련을 위한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함.
장면1과 장면2는 필자가 지난 20여 년 동안 사립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표현의 자유 침해’ 경험이다. 장면3은 최근 서울의 한 학교에서 발생한 학생의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이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침해하는 일은 과거나 현재를 막론하고 교육 현장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토끼풀》 언론 탄압 사건은 단지 한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들이 세상과 소통하려는 시도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제지당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는 증거다. 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순간, 생각은 움츠러들고 세상에 대한 감각은 무뎌진다. 청소년이 글과 말로 사회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건강한 모습이다.
교사들도 같은 벽 앞에 서 있다. 교사가 사회 현안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정치 활동’으로 문제시된다면, 교육은 현실과 동떨어진 형식으로 남는다. 교사는 시민이며 동시에 민주주의 교육의 실천자다.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의 문화를 이끄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다. 그러나 교사의 정치 기본권이 억눌린 교실에서는 민주 시민을 길러낼 수 없다.
《토끼풀》 탄압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말하지 못하는 학생, 침묵을 강요받는 교사가 있는 학교에서 어떻게 자유를 배울 수 있는가.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와 교사의 정치적 권리는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교육의 자율성은 흔들리고 민주주의는 학교 안에서 사라진다.
이제 학교는 ‘틀리지 않는 답’을 강요하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생각을 키워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마음껏 말하고, 교사가 두려움 없이 토론하는 그 순간에 비로소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자유롭게 말하고 듣는 수업이야말로 더 나은 사회를 여는 출발점이다. 과거보다 더 나아진 학교 민주주의를 이제는 학생의 표현의 자유와 교사의 정치 기본권에서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