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정치참여 보장해야

언론탄압 특집호 시민기고 - 박세영

나는 정당에서 청소년의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 활동가였다. 청소년이 정치적 의제에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로서 산다는 것은 여전히 신기한 눈초리를 받는 일이다. 박근혜 탄핵 직후에는 더 그러했다. 당시 많은 청소년들이 비청소년들과 함께 박근혜 탄핵 광장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박근혜를 탄핵하는 데에는 청소년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도 큰 몫을 했다 여겨지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큰 몫을 하더라도 청소년은 비청소년보다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본인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보장하라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말은 너무나 뻔하다. 청소년은 비청소년보다 “어리기” 때문에 그 권리는 박탈당해 마땅하다는 것이다. “어리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14살에 수학이나 과학을 잘해 천재 소리를 듣는 청소년은 좋아하지만, 같은 나이에 정치적인 의제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부모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올바르지 못한 청소년이라며 비판하기 바쁘다. 청소년 활동가 시절을 돌아보면, 기자회견이나 활동보고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에 올리는 순간 비판과 비난의 댓글들을 목격한 적이 많다.

청소년 극우화를 막을 방법이 요새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한 교육대학교 교수는 본인의 자녀를 극우에서 건져냈다고 책까지 출판한 것을 보니 ‘청소년 극우화’는 뜨거운 감자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청소년 없는 청소년 극우화 담론장이 굉장히 불쾌하다. 청소년들이 극우화되는 이유는 전적으로 비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청소년들이 청소년들에게 정치에 대하여 제대로 생각할 시간이나 주었는가? 학벌만능주의로 점철된 학교에서는 대학 진학에만 중점을 두고 작동하며,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하지 않는다. 

저번 박근혜 탄핵광장에 이어서 이번 윤석열 탄핵광장에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광장에서 함께하였다. 청소년들은 국회 앞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광화문에서 비청소년들과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서 서 왔다. 이런 청소년들이 없었다면, 헌정질서를 유린한 윤석열을 탄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청소년에 대한 고질적인 이미지에 대하여 탈피해야 하는 시기이다. 청소년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는 그날이 우리나라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나아가는 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