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언론 자유가 보장되어야 민주사회가 온다
하태욱 (신나는학교(경기도교육청 미래형 공립 대안학교) 교장)
1989년 2월 학교 교지편집장이던 나는 교장실로 호출을 받았다. 올 것이 왔구나. 까짓것 학교 때려치우면 그만이지 되뇌이며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노발대발하던 교장선생님과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던 편집부 담당 선생님, 그리고 ‘넌 무기정학이야, 이 XX야...’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학교폭력은 교사로부터 대물림되고, 쓰지도 않는 보충수업 교재를 강매 받는 것이 당연했으며, 촌지요구가 공공연하던 시절이었다. 부글부글하던 학생들이 모여 성토의 장을 열었고, 우리 편집부는 그걸 취재해 원고화하기로 했다. 담당교사는 원고를 꼼꼼히 보지도 않고 자기 대신 편집장 학생에게 인쇄소에 전달하라 시키는 게 관례였기에 그 빈틈을 공략해보기로 결심했다. 문제의 원고가 빠진 가편집본으로 검토를 받은 후 을지로로 가는 버스 안에서 슬쩍 끼워넣었다. 평소 교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교장선생님이 배포 전에 먼저 가져와보라고 할 때 거사가 실패했음을 알았다. 겨우 편집부실로 돌아와보니, 친구들은 눈물 속에 교지에서 문제의 부분을 잘라내고 있었다. 도대체 학교는 바뀔 수 없는 것일까를 고민하던 나는 교육학을 전공하고 국내외 혁신·대안교육을 연구하는 교수로 있다가,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보기 위해 현재 미래형 공립 대안학교인 ‘신나는학교’의 공모교장으로 와있다.
따져보니 36년 전 이야기인데, 최근 ‘토끼풀’의 배포금지 사태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마음이 복잡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이 변화했나? 최근의 게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그리고 응원봉 집회를 보며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훼손 시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자긍심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는 교사라는 주체가 학생이라는 대상에게 수직적으로 관계맺는 것이 당연한 공간이다. 시혜적인 측면에서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면 그나마 다행일 뿐, 동등한 가치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民主)란 구성원 하나하나가 스스로 주인됨을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보장된 체제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의 권력위계나 학생회 간부들만의 특권을 넘어, 목소리를 함께 나누고 공동체 안에서 조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민주학교’다. 어려서부터 민주적으로 살아내야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학교가 민주주의의 치외법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청소년 풀뿌리 언론 ‘토끼풀’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