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배신감 느껴요"

영락중, 재단 예산 비중 0.8%면서...서북청년단·군사독재 옹호 한경직 목사 '우상화'에 예배 강제

"학교에 배신감 느껴요"
영락중학교 배움터지킴이실 모습. 사진 문성호 기자
한경직(韓景職, 1902년 12월 29일 ~ 2000년 4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장로교 목회자이자 사회사업가로, 영락교회를 설립하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구호 활동을 펼쳐 아시아 최초로 템플턴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개신교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꼽히나, 일제 말기 신사참배 참여 이력과 군사 독재 정권 시기의 정치적 유착 행보로 인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영락학원, 숭실학원, 대광학원 등 교육기관도 다수 설립했다.

한경직은 성인이었다. 영락교회(당시 베다니전도교회)를 설립해서 1950년대 실향민을 비롯해 불우한 이들을 도왔다.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숭실학원을 재건했고, 대광학원, 영락학원, 장로교신학대 등 여러 교육기관을 직접 설립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하고도 상금을 전부 기부할 만큼 청빈하게 살았다. 2000년 사망 당시 유품은 침대, 안경, 양복 몇 벌과 성경뿐이었다. ‘동양의 성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경직.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한경직은 '죄인'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신사참배(우상 숭배)를 했다. 템플턴상 시상식에서 고백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일제 때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해방 이후 좌우가 대립하던 시기, 한경직은 반공 우익 기독교 세력의 대부였다. ‘공산주의 척결’에 앞장섰다. 제주 4·3 사건의 주범인 서북청년단도 이 당시 창설됐다. 한경직이 설립한 영락교회 청년들이 주축이었다. 한경직은 테러와 암살을 일삼던 이들의 행위를 방조했다. 한경직은 자서전에 자랑스럽게 썼다.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한경직 목사』, 규장문화사, 1982)”
한경직이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초청 국가와 민족을 위한 조찬 기도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평화나무> 영상 캡쳐

한경직은 군사독재 쿠데타 세력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했다. 1980년 8월 6일 오전 7시,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초청 국가와 민족을 위한 조찬 기도회’가 열렸다. 광주민중항쟁을 무력 진압한 직후였다.

“우리 모두가 자신을 깨끗이 하는 행동을 하는 데서 비상 시국을 잘 처리해 나갈 수 있으며, 이때야말로 우리 민족이 새로와져서 세계 모든 사람이 흠모하는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한경직이 기도했다. 전두환은 “지금 우리는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며 “나라의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했던 일부 정치인들의 과열된 정치활동, 사회 기강의 해이를 틈탄 갖가지 비리, 그리고 일부 학생들의 몰지각한 활동으로 우리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으며 급기야는 불순분자들의 배후조종에 의해 불행한 광주 사태까지 일어났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0년 8월 6일자 경향신문·동아일보 1면)

보수 개신교계의 군사독재 세력에 대한 축복이었다. 10일 후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했다. 그리고 4일 후 9월 1일, 전두환은 대통령 자리에 스스로 올랐다.

한경직 목사가 세운 영락교회. 사진 문성호 기자

1945년, 한경직은 고향 신의주에서 ‘기독사회민주당’을 창당했다. 한국 개신교계 정치 참여의 시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기총은 보수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성장했는데, 2019년 전광훈이 한기총 대표회장이 됐다. 전광훈이 “사랑제일교회는 한경직 목사가 지어준 예배당”이라고 주장했다가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가 “어떤 연결점도 없다”고 반박한 해프닝이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경직은 공과 과가 뚜렷하다. 잘한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잘못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처럼 좋은 일들도 많이 했지만, 독재자였고 학살자였다는 비판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학교는, 교육 기관으로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입체적 평가를 모두 교육할 책무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역사 왜곡이다.

영락중학교 모습. 사진 문성호 기자

재학생·졸업생 "한경직 목사 우상화 교육했다" "배신감"

한경직은 숭실학원(숭실중·고·대학교), 영락학원(영락중·고) 등 여러 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였다. 한경직이 설립한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에게 한경직 목사를 어떤 인물로 가르칠까. <토끼풀> 취재 결과, 영락중학교는 한경직 목사를 ‘성자’로만 가르치고 있었다. “우상화”라는 졸업생 증언까지 나온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는 개신교 십계명에도 어긋난다.

현재 1학년 학생 전원이 수강하고 있는 ‘종교’ 과목에서는 "2~3시간에 걸쳐 한경직 목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1학년 C학생)"한다. 1학년 A학생은 “다른 시간에는 게임 위주로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한경직 목사에 대해서는 어떤 분이고, 어디서 사셨고, 무엇을 하셨는지 전체적인 내용을 배웠다”고 했다. “대단하다" "위대하다” 등의 용어도 나왔다고 한다.

2017년에 졸업한 졸업생 B는 “1년에 한두번씩은 한경직 다큐멘터리를 봤다”며 “한국인 최초 템플턴상 수상자라는 점을 특히 부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지나고 보니 한경직 목사에 대한 과한 우상화가 이상했다.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보고 쓸 사람이 없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그냥 한경직 쓰라'고 부추기기도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4·3을 일으킨 서북청년단을 옹호하고 군사독재에 정당성을 부여한 등 한경직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재학생·졸업생들은 공통적으로 ‘배신감’을 토로했다. 졸업생 B는 “고등학교 올라가고 4·3 관련 유튜브를 보고 알게 됐다”며 “배신감도 들고, 담임목사나 교사들은 알고서도 모른 척한 건지 화도 났다”고 말했다. C학생도 “알려줄 거면 다 알려줘야지, 좋은 것만 알려준다. 배신감이 있다”고 했다. 3학년 D 학생은 “충격적이다.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면 분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락중학교 한경직관 모습. 사진 문성호 기자

국민 혈세로 지은 건물이 '한경직관'?

영락중학교는 건물 이름조차 ‘한경직관’이다. 한경직관에 붙은 안내문에는 "한경직 목사님의 학원 선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영락교회 성도들의 헌금과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으로 2005년 2월 5일에 완공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과거 2006년 영락중학교 축대(경사진 지역에서 건물을 세우기 위해 쌓는 터. 영락중학교는 한경직관을 축대와 동시에 건축했다.) 붕괴에 관한 <은평시민신문> 기사에서 서부교육지원청 시설과 직원은 “(2005년 한경직관과 축대 공사에) 교육청 예산도 많이 지원되었다”고 하기도 했다. 세금이 투입돼 지은 건물에 학교 설립자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경직관에 붙은 안내문.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으로' 부분이 눈에 띈다. 사진 문성호 기자

영락중학교는 학교를 운영하는 예산도 국가에서 대부분 지원받는다. 영락중학교 2024학년도 예결산서를 보면, 학교 운영 비용의 0.8%만 학교법인 영락학원(사실상 영락교회와 동일 재단이다. 영락학원 직원은 0명이고, 법정부담금 전액을 영락교회 기부금으로 냈다)에서 받았다. 94%는 교육청, 4%는 학부모들이 부담했다.

사실상 공립인데...종교 수업 강권, 영락교회 성탄예배로 '체험학습'까지

사실상 공립학교처럼 운영되는데도, 영락중학교는 한경직 미화 교육 등 재단의 입맛에 맞는 종교 교육을 하고 있다. 명목상 ‘종교’ 대신 ‘환경’ 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1·2학년에서 환경 과목을 듣는 사람은 없다. 2023년 졸업한 졸업생 E는 "'환경'을 선택한 사람은 모두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해야 했다"며 "종교 수업에서 재미있는 활동을 많이 한다고 설득했다"고 했다.

매일 아침 조회 시간, 전 교실에서 별도로 지정된 '선교부장'이 기도도 한다. D학생은 "환경 수업을 선택한 사람도 아침 조회 시간에 기도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요일 아침 예배도 필수 참여다. 졸업생 E와 1학년 A는 말한다.

"수요일 아침마다 대강당에 예배를 드려야 했다. 심지어 이건 선택해 듣는 것도 아니었다. 반마다 돌아가며 찬양을 드려야 했는데, 찬양도 필수였고, 학생회라면 학생회 성과 발표회에서 학생회 찬양까지 해야 했다 (E졸업생)"
“수요일 아침 8시 25분부터 9시 15분까지 예배를 하는데, 모든 학생이 참여한다 (A학생)”

매년 크리스마스 전후로는 일과 중 영락교회에서 전교생이 예배에 참여한다. ‘체험학습’ 명목으로 외부 종교 행사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올해 12월 23일에도 '성탄축하예배'가 예정되어 있다.

영락중학교 홈페이지 캡쳐

입학할 때 성경을 나눠주기도 한다. 3학년 D 학생은 "성경책을 무료로 배부하고, 예배와 종교 수업에 필수로 지참해야 한다"고 했다. 졸업생 E는 "영락교회에서 지원해준 비싸고 좋은 성경이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덧붙였다.

의무 교육인 중학교에서 이뤄지는 종교 강요는 그 자체로 인권침해다. 학생인권조례에도 ‘학생에게 예배·법회 등 종교적 행사의 참여나 기도·참선 등 종교적 행위를 강요하는 행위’와 ‘학생에게 특정 종교과목의 수강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고,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2008다38288)까지 있다. 윤명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장은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학교라 하더라도, 공적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의 자율성과 종교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영락중 관계자는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신앙 강요는 없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영락중학교 교목(학교 소속 목사)은 취재를 거절했다.

학생들이 학교에 '배신감'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게 정상적인 일일까. 학교는 신뢰의 공간이다. 무교나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들에게도 종교를 강요하고 설립자 숭배 교육을 하는 건 신뢰를 잃는 행위다.

"전 무교였는데 친구들이 다 들으니까 종교 수업을 들었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마인드로 수업에 임했는데, 이제는 배신감이 느껴져요. 지금 종교 수업을 듣지 않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안 들을 거예요" (1학년 C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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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종의 경로로 영락중학교에 알려졌다. 영락중학교 ㄱ 교사는 <토끼풀>에 “풍문으로 들었다. 학교에서 염려한다”며 “공정과 진실이 담긴 기사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 기사가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