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유로 자사고 못 간다?
남성이 여성 2.5배 육박...“불균형 초래하는 자사고 폐지해야”
전국 33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들의 모집 정원을 <토끼풀>이 전수조사한 결과, 여성 학생 선발 비율이 남성 학생의 0.4배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6학년도 기준으로 전국에서 남자는 7901명 뽑고, 여자는 3199명을 뽑는다.
자사고는 교육과정 편성·교원 인사·재정 운영 등에서 일반계 고등학교(일반고)보다 더 많은 자율성을 갖도록 2010년 도입된 학교 유형이다. 일반고와는 달리 학생을 선발할 수 있고, 등록금도 800만원가량으로 높게 받는다.
자사고는 전국 단위와 광역 단위로 나뉘는데, 전국 단위는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고, 광역 단위는 광역자치단체(경기도, 대구광역시 등) 내에서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서울에만 16개(전국 1개 광역 15개)가 있고, 그 외 지역에 17개가 분포한다. 서울 외 지역의 전국 단위 자사고는 9개, 광역 단위는 8개가 있다.
“대전 여학생 갈 곳 없다”...지역별 불균형도
자사고들의 성별 차이는 단성학교(남고·여고)의 개수에서부터 극명히 드러난다. 서울만 해도 11개 자사고가 남자고등학교이고, 여자고등학교는 이화여고·세화여고 2개에 불과하다. 남녀공학은 하나고·한대부고·현대고의 3개였다. 남녀 성별을 동수로 뽑는 학교는 성별 정원이 100명인 하나고뿐이었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 봐도 단성학교 비율의 차이는 컸다. 남녀공학은 15개였고, 남고는 16개, 여고는 이화여고·세화여고 2개였다.
표로 정리하니 대전광역시가 눈에 띄었다. 대전은 자사고가 남고만 2개 있어 여성 학생은 자사고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전에 거주하며 전국 단위 자사고인 외대부고(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A학생(여성)은 “자사고(대신고·대성고)는 다 남고고, 대전에서 입결(입시 결과)이 좋은 학교(충남고·대전고 등)도 다 남고라 여자 학생들은 좋은 학교를 갈 수 없다”며 “태어날 때부터 정하지 않은 성별 때문에 다른 선택지(전국 자사고, 일반고 등)를 찾아야 하는 것이 별로”라고 말했다.
입시에 유리한 자사고, "성비 불균형이 사회 진출 불균형으로 이어져"
자사고는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성을 일반고보다 폭넓게 보장받는 만큼, 수준 높은 수업과 커리큘럼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 도입된 고교학점제로 선택 가능한 과목 수가 수업의 질과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로학원의 분석 결과, 자사고는 평균적으로 개설된 과목 수가 100개 이상이었고, 일반고들은 100개에 이르지 못했다. 가장 적은 일반고의 과목 수는 63개였는데 가장 많은 자사고는 127개에 달했다.
전국 단위 자사고인 하나고등학교는 학생들이 1학년부터 직접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전면 개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광역 단위 자사고인 중앙고등학교도 기숙사와 면학실을 운영하는 등 교육과정 면에서 일반고와 차별화되어 있다.
자사고는 대학 진학에서도 일반고보다 이점이 많다. <베리타스알파>에서 조사한 서울대학교 합격자 배출 고등학교 상위 31개교 중 일반고는 9개뿐이었다. 자사고는 12개였는데, 전국 2387개 고등학교 중 1%만 자사고인 데 비하면 대학 진학에서 자사고가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진학이 곧 사회 진출로 이어지는 만큼, 여성 학생들이 자사고 성비 차이로 사회 진출에까지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대전 거주 A학생은 “대전에서 학연이 끈끈한 학교들(자사고와 상위 일반고 등)이 전부 남고라서 자연스레 사회 진출에도 여성이 불리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여성 학생들이 지원할 학교의 수 자체가 적다 보니,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뽑는 학교들에서는 여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서울 현대고등학교(광역)의 경우 여성 292명, 남성 63명으로 5배가량 차이가 났다. 부산 부일외고(광역)와 경기 용인외고(전국)도 남녀 학생의 수가 각각 173:60, 226:132로 여성 학생의 수가 남성에 비해 2~3배가량 많았다.
오래된 남고 비율 많아...교육 선택권 제약
이같은 성비 문제의 원인은 대다수 자사고들이 오래 전 설립돼 수십 년에서 길게는 100년 넘게 지역 명문고로 자리잡은 단성 학교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체 자사고 개교 연도의 평균이 1962년인 데 비해 단성 자사고(남고·여고)들의 개교 연도 평균이 21년가량 이른 1941년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남녀공학 학교들은 평균적으로 1987년에 개교했다.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국제고등학교의 경우도 과학고는 80% 넘게 남성, 외고·국제고는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자사고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과학고·외고·국제고는 과학과 외국어를 중점적으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남성과 여성 간 특성과 진로 선호도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김창식 엠베스트 입시전략 수석연구원은 2021년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여학생은 아무래도 이공계(과학고)보다는 인문계(외고·국제고)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실하다”고 했다.
반면에 자사고는 외고에서 전환한 외대부고·부일외고 등을 제외하면 이공계와 인문계 간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한 전국 단위 자사고에 재학 중인 B학생은 “자사고들은 이과와 문과 과목이 전부 개설되고, 학생들도 고루 분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남고 중심 구조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2025년에도 여성 학생들은 태어난 성별에 따라 교육 선택권을 제약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사고가 모두 남고인 대전과 같은 지역에서는 여성 학생은 아예 자사고 진학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사고의 대학 진학 실적이 일반고보다 월등히 좋고 교육과정도 차별화되어 있는데 여성 학생 선발 비율이 낮은 만큼, 성비 문제의 해소 없이는 자사고 제도 자체의 정당성도 의문에 처할 수밖에 없겠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홍순희 서울지부장은 “모든 학생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소수의 학생들만 더 나은 교육을 받는 것은 불평등”이라며 “자사고 자체가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 학생들도 집 근처 자사고에서 일반고와 다른 수준 높고 질 좋은 수업과 커리큘럼을 타고 싶은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하는 것이 억울합니다” (대전 거주 A학생)